엄마는 딸의 발이 커지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 딸에게 한 사이즈가 작은 신발을 신겼다. 옷차림을 확인하기 위해 외출 전이면 눈으로 딸의 모습을 위아래로 훑었다. 딸이 뛰어난 사람이 되길 요구했지만 아들보단 더 잘나면 안 된다고 했다. 그래서 딸은 항상 엄마 곁에서 도망치고 싶었다. 엄마를 오래 싫어했다.
그러나 딸은 엄마를 싫어하는 일을 끝낼 수밖에 없었다. 2017년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고 엄마는 알츠하이머에 걸렸다. 엄마는 현금인출기에서 돈을 찾는 법을 까먹을 정도로 삶이 망가졌다. 엄마는 딸에게 짐이 되기 싫다며 스스로 요양원에 들어갔다. 엄마를 모시기 버거워하는 자신의 마음을 알고서 먼저 말을 꺼낸 것일지도 모른다.
5일 펴낸 에세이 ‘어금니 깨물기’(마음산책)에서 엄마에 대한 애증을 고백한 김소연 시인(55·사진)은 3일 전화 인터뷰에서 “1932년생인 엄마는 일제강점기, 6·25전쟁을 겪으며 억척스럽게 살아온 한국의 전형적인 여성”이라며 “다정함을 못 배운 사람이었기 때문에 나를 착취하고 내게 무엇인가를 강요하는 것처럼 느껴졌다”고 했다.
“엄마 앞에만 있어도 울음이 터질 것 같았어요. 내 생각을 엄마가 다 알까, 내가 엄마를 얼마나 싫어하는지 들킬까 싫었죠. 한국 사회의 많은 딸들처럼 엄마를 보며 난 ‘엄마처럼 살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어요.”
세상을 떠나기 전 엄마는 딸 앞에서 울었다. 약해진 엄마를 보며 그는 깨달았다. 엄마가 엄마의 역할을 끝내고 이젠 내 자식이 됐다고. 엄마가 억척스러웠던 건 자식을 지키기 위해서였을 뿐이라고. 그는 “올 2월 엄마는 심정지로 세상을 떠났다”며 “엄마를 용서한 것도, 엄마와 화해한 것도 아니지만 엄마를 싫어할 수 없게 됐다”고 했다.
김 시인은 엄마를 인천 앞바다에서 해양장(海洋葬)으로 떠나보냈다. “죽기 전에 제주도 한번 여행하고 싶다”던 엄마의 유해가 바다를 타고 인천에서 제주로 흘러가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인터뷰 말미 “엄마가 보고 싶다”고 하던 김 시인. 그는 인터뷰가 끝난 뒤 자신이 쓴 시를 보내왔다.
“싸가지가 없다고 어린 딸을 때리던/그때의 엄마 나이가 되어 있었고/딸에게 의지하여 딸이 된 엄마는 그러나/싸가지가 없을수록 눈물겨웠다”(‘십일월의 여자들’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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