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인간이 개를 길들였다고? 아니, 개가 인간을 길들인 거야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6월 11일 03시 00분


◇개는 천재다/브라이언 헤어, 버네사 우즈 지음·김한영 옮김/476쪽·2만2000원·디플롯

개는 천재다. 단어를 익힐 만큼 지능이 높아서가 아니라 사람의 말과 몸짓에 반응할 줄 알아서다. 견주가 손가락으로 장난감을 가리키며 “가져오라”고 말하면 개는 손이 가리킨 곳을 향해 달려간다. 반면 인간과 가장 닮은 침팬지는 인간의 손짓에 반응하지 않는다. 침팬지는 많은 단어를 외우거나 사물을 인지할 수는 있어도 인간과 소통할 수는 없다. 오랜 세월 인간이 개와 한집에서 함께 살아갈 수 있었던 건 개가 인간과 소통하는 능력을 가진 생물체로 진화했기 때문이다.

미국 듀크대 진화인류학과 연구팀에 속한 두 저자는 지난해 국내 출간된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디플롯)에 이어 이 책에서도 “인간이 늑대를 가축화해 가정견을 탄생시켰다”고 보는 동물학계 통설을 뒤집는다. 인간이 늑대를 길들여 개로 가축화한 것이 아니라 영리하고 천재적인 개가 생존과 번영을 위해 인간과 더불어 사는 길을 선택했다는 주장이다. 공격성을 띠는 것보다 인간과 친밀하게 지내는 것이 생존에 이롭다는 사실을 깨달은 일부 늑대 종이 진화를 거듭해 스스로 개가 됐다는 것. 실제로 인간과 개가 공존하기 시작한 4만 년 전, 수렵 생활을 하던 인류는 늑대에게 사냥감을 내줄 정도로 먹거리가 풍족하지 않았다. 인간이 공격적인 늑대를 길들였다는 학설보다 늑대가 개로 진화해 인간에게 다가갔다는 주장이 더 설득력이 있는 이유다.

“개는 우리 자신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황금열쇠”라는 저자의 말처럼 인간과 개는 서로 닮았다. 수렵채집 시기 인간은 타인에게 지나치게 공격적인 이를 무리에서 쫓아내기 위한 집단 방어체계를 만들었다. 인류 진화의 역사에서도 공격성보다 친화력이 생존에 유리했다는 얘기다. 친화력은 서로에게 이롭다. 저자 연구에 따르면 반려견과 견주가 30분간 빈방에서 서로에게 관심을 쏟고 밀접하게 접촉하자 쾌감을 높여주는 도파민 분비량이 둘 모두에게서 증가했다. 개가 인간에게 충성하는 대가로 집과 음식을 얻는 것처럼 인간도 개 덕분에 행복을 얻는다. 어쩌면 친화력이야말로 개와 인간 모두에게 가장 중요한 능력 아닐까.
#개는 천재다#진화인류학과#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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