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재의 띠지 풀고 책 수다]태평양 건너편의 시인들 사랑과 평화를 노래하다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6월 11일 03시 00분


◇우리가 노래했던 바람/레온 데 그레이프 외 11명 지음·송병선 옮김/128쪽·1만2000원·사회평론

이달 1∼5일 열린 서울국제도서전을 지켜보며 아쉬운 점이 있었다. ‘국제’ 도서전이라는 이름에 걸맞지 않게 국내 작품이나 작가 위주로 주목받았다는 것이다. 작가 김영하의 강연엔 300여 명의 청중이 몰렸지만 주빈국인 콜롬비아 전시관엔 관람객이 붐비지 않았다. 콜롬비아 작가 30여 명이 온·오프라인으로 강연과 전시를 선보인 것에 비하면 섭섭한 반응이다. 스페인어권 나라가 서울국제도서전에 주빈국으로 참여하는 건 처음이고, 남미 문학이 한국 독자들에게 낯선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올해 4월 콜롬비아 보고타 국제도서전에서 열린 작가 은희경의 강연에 독자 200여 명이 몰렸던 상황을 생각하면 씁쓸하다.

이 책은 콜롬비아 유명 시인 12명의 대표작을 모은 시선집이다. 콜롬비아 시선집이 우리나라에서 출간되는 건 처음이다. ‘시인의 나라’로 불리는 콜롬비아의 시를 읽어 보자.

“초록색의 순수한 눈, 경치를 바라보았다./달 뜬 밤에 엎어져 있는 커다란 얼룩이/가득한 암소 한 마리, 달이 비스듬히 기울 때면, 나뭇가지 위의 꼬리 붉은 검은 새, ‘작은 불꽃’, ‘꿀사과’ 같다.”(아우렐리오 아르투로 ‘남쪽의 집’ 중)

시인은 콜롬비아 남부의 비옥한 풍경을 아름답게 그린다. 시어엔 조국의 자연에 대한 애정이 묻어난다. 시인은 과거에서 아름다움의 기원을 찾기도 한다.

“이 사랑은 지금에서 비롯되지 않는다. 아니다./그것은 저 멀리서 온다./수백 년의 침묵에서,/우리가 또 다른 이름을 가졌고, 또 다른/덧없는 피가 우리 혈관에서 넘쳐흐르는/순간에서 비롯된다.”(메이라 델마르 ‘오래된 뿌리’ 중)

콜롬비아의 역사는 핍박과 혼란의 연속이다. 콜롬비아는 16∼18세기 스페인의 지배를 받았다. 독립 후에도 정치 상황이 불안해 독재, 테러에 시달렸다. 현재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인플레이션, 양극화로 국민 불만이 가득하다. 그래서일까. 투쟁과 저항의 기운이 느껴지기도 한다.

“내 손바닥에는 아무것도 없다./그러자 손을 쥐어 주먹을 만들고서 싸우기로 했다,/다른 사람에게 빼앗긴 것을 되찾기 위해.”(프렌디 치칸가나 ‘한 줌의 흙’ 중)

최근 콜롬비아 문학 작품이 국내에 연달아 소개되고 있다. 폭력이 만연했던 콜롬비아의 현실을 밀림에 빗댄 장편소설 ‘소용돌이’(문학과지성사), 정치인이 총에 맞아 살해된 이야기를 그린 장편소설 ‘폐허의 형상’(문학동네), 붕괴된 사법 체계를 풍자한 장편소설 ‘청부 살인자의 성모’(민음사)…. 콜롬비아에선 드라마와 음악의 인기에 힘입어 한국 문학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고 한다. 서울국제도서전을 계기로 출판계가 콜롬비아 문학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면 좋겠다. 우리 작품을 해외에 소개하는 일뿐 아니라 해외 작품을 국내에서 다양하게 접하는 데서 진정한 문화강국이 시작될 것이다.
#태평양#시인#사랑#서울국제도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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