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으로 찾아오는 ‘그 기억’에서 어떻게 벗어날까[책의 향기]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6월 11일 03시 00분


◇트라우마는 어떻게 삶을 파고드는가/폴 콘티 지음·정지호 옮김/340쪽·1만9000원·심심

한 노부부는 근처 공원 여러 곳을 수년간 함께 거닐었다. 어느 날 갑자기 할아버지가 쓰러졌다. 심장마비였다. 할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후 공원은 할머니를 가장 괴롭게 만드는 장소가 됐다. 할머니는 죄책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뭔가 이상한 낌새를 눈치챘어야 하는 것 아닌가?’ 남편의 죽음이 떠오르면 불면과 악몽에 시달렸다.

이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인 저자가 꼽은 트라우마 사례다. 저자는 팝가수 레이디 가가의 주치의기도 하다. 누군가는 트라우마가 충격적인 단발성 사건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저자는 사건의 경중과 관계없이 혹은 사건과 관련한 자책 등으로 트라우마는 발생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그는 췌장암으로 돌아가신 자신의 어머니와 관련된 경험을 털어놓는다. 이전에는 생각에도 없던 췌장(pancreas)이라는 단어와 비슷한 팬크라스역(pancras)에 반응하게 된 것. 역까지 걸어가는 동안 “좀 더 자주 찾아뵀어야 하는데…”라고 되뇌며 후회했다. 사실 수개월 동안 2주에 한 번씩 꼬박꼬박 찾아갔는데도 말이다.

저자는 살면서 일어나는 많은 문제의 뿌리를 트라우마로 본다. 건강 문제가 트라우마와 연결되기도 한다. 저자는 스무 살 동생의 극단적 선택도 고백한다. 16세에 선천성 희귀질환으로 소화관 전체가 마비된 동생은 체중과 기력이 빠지고 두려움에 사로잡혔다. 이 모든 수난은 동생에게 트라우마로 남았지만, 동생은 항상 강하고 행복한 모습만을 보여주고 싶어 했다. 저자는 이 때문에 동생의 몸과 마음이 더 망가졌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고 의사가 되겠다고 마음먹었다.

트라우마는 자책감과 수치심을 동반한다. 환자들은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서 자신을 탓하기 바쁘고 자신이 행복한 삶을 누릴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게 된다. 저자는 이런 상처를 회복하기 위한 치유법을 제시한다. 자신이 아닌 구체적인 한 사람을 떠올리고 그가 살면서 당연히 누려야 할 기본 사항을 생각해 보라는 것이다. ‘하루 세끼 건강한 식사’ ‘안전한 집과 차’ 같은 것들을 노트에 적어 내려가다 보면 자신에게 부족한 부분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자신이 몰랐던 트라우마나 심리적 스트레스를 인지하고 치유하는 방법에 대한 조언도 담았다.
#트라우마#자책감#수치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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