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개국 설화 1364편 엮은 ‘다문화 구비문학대계’ 발간
“언어-문화-국가 서로 달라도 비슷비슷한 사람 이야기 담겨
동남아 설화는 타인 포용 강조”
신데렐라, 백설공주, 라푼젤…. 서구에서 오래전부터 전해 내려오는 설화(說話)는 동화책은 물론이고 디즈니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돼 세계 어린이들의 가슴속에 뿌리내린 지 오래다. 30년 넘게 구비문학을 연구한 신동흔 건국대 국어국문학과 교수(59)는 서구 설화보다 우리 주변에서 살아가는 이주민이 품고 있는 옛이야기가 궁금했다. 그의 경기 양평군 집 주변에는 중국 출신 이주민이 산다. 베트남, 필리핀 등 동남아시아에서 온 이주여성도 쉽게 만날 수 있다. 어쩌면 우리와 함께 살아가고 있는 이들에게서 우리가 몰랐던 새로운 이야기를 들을 수 있지 않을까.
“서구 유럽의 설화는 익히 알려져 있는데 정작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동남아 출신 이주민의 이야기에는 귀 기울이지 않았어요. 어쩌면 진정 새로운 이야기는 그들로부터 나오지 않을까요.”
신 교수 등 구비문학 연구자 16명이 1364편에 달하는 세계 구전설화를 정리한 ‘다문화 구비문학대계’ 21권(북코리아)을 최근 펴냈다. 2016년부터 3년간 캄보디아, 필리핀, 베트남, 인도네시아, 카자흐스탄 등 27개국 출신 이주민 136명을 인터뷰한 결과다. 서울 광진구 건국대 연구실에서 13일 만난 신 교수와 오정미 인하대 다문화융합연구소 연구교수(46), 김정은 건국대 서사문학치료연구소 연구교수(48)는 “옛이야기는 서로 다른 사람들을 이어주는 연결고리”라고 말했다.
언어나 국가는 달라도 각국 설화에는 비슷비슷한 사람 이야기가 담겼다. 2017년 12월 김 교수가 경북 경산에서 만난 베트남 출신 이주여성 부티프엉 씨(32)는 웃음기 가득한 얼굴로 “우리나라에도 ‘콩쥐팥쥐’와 비슷한 이야기가 있다”며 ‘의붓자매 떰과 깜’ 설화를 들려줬다. 새엄마가 자신의 친딸 깜과 함께 의붓딸 떰을 학대하다 벌을 받는 이야기다. 언어나 문화는 서로 달라도 아이를 학대하면 처벌받는다는 인과응보의 가치관을 공유한 것. 그뿐일까. ‘망태 할아버지’ 설화는 문화권에 따라 할머니로 변주되는 차이만 있을 뿐, 부모 말을 듣지 않는 아이에게 들려주는 경고라는 공통된 메시지를 담고 있다.
“우는 아이를 달래려고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내는 부모 모습은 세계 어디서나 같아요. 겉모습은 달라도 우리는 결국 같은 인간이니까요.”(오 교수)
설화는 서로 다른 문화를 깊이 있게 이해하는 통로가 돼주기도 한다. 필리핀에서 전하는 ‘첫 번째 원숭이 루파네스’ 설화가 대표적이다. 동물 가죽을 벗겨 질기고 강한 옷을 만들어 팔던 상인에게 분노한 신이 그를 털가죽으로 뒤덮인 원숭이로 만들었다는 이야기에는 동물의 생명을 중시하는 필리핀 문화가 깃들어 있다. 오 교수는 “동남아 설화에는 자연과 공존하고 타인을 포용하는 문화가 뿌리내려 있다. 3년의 연구를 통해 내 안의 편견을 돌아보게 됐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다문화 구비문학대계’를 바탕으로 대학에서 학생들과 함께 동화를 제작하는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이주민이 들려준 설화가 다문화사회에서 살아갈 우리 아이들에게 다름을 받아들일 자양분이 돼 줄 것이라는 믿음에서다.
“책에 담긴 1364편의 이야기는 우리 사회 구성원이 된 이주민이 우리말로 풀어낸 우리의 문화자원입니다. 앞으로 이들의 이야기가 우리 사회를 더욱 다채롭게 만들어 줄 거라고 믿어요.”(신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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