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베를린의 평범한 주부 마리아 니켈은 1942년 자신의 집 인근에서 강제 노동을 하던 유대인 여성 루트 아브라함이 임신한 사실을 알게 된다. 그는 아브라함 부부에게 식료품을 가져다주고 출산도 도왔다. 나치 정권의 유대인 강제 이송이 다가오자 가짜 신분증명서도 만들어줬다. 그 덕에 아브라함 부부는 당국의 체포를 면할 수 있었다.
니켈은 비정상적 시대에 맞서 양심이 이끄는 대로 행동한 평범한 시민의 표본이었다. 그는 1948년 아브라함 부부가 뉴욕으로 간 이후에도 연락하며 평생 친구로 지냈다고 한다.
저자는 독일 근현대사와 나치 정권 연구에 천착해 온 일본 서양사학자. 독일군 내 일부 세력이 히틀러 암살을 시도한 ‘1944년 7월 20일 사건’ 등 잘 알려진 반나치 운동 대신 거의 알려지지 않은 ‘작은 저항’에 주목한다.
히틀러의 독재는 물론이고 그에게 열광한 ‘대중독재’가 동시에 이뤄진 밀고·감시 사회에서 반나치 활동에 투신한 시민들은 또 있었다. 히틀러가 자행한 장애인 안락사 작전 등을 비판한 클레멘스 폰 갈렌 주교의 강론 문서를 배포하는 데 앞장섰던 마리아 테르비엘이 대표적이다. 그의 남편인 치과의사 헬무트 힘펠 역시 유대인을 대상으로 무료 진료에 나섰다. 저항 활동에 앞장섰던 두 사람은 모두 사형당했다. 의사, 제과점 주인, 건축가 등으로 구성된 ‘에밀 아저씨 그룹’을 포함해 저항단체에서 활동한 이들도 소개한다. 저자는 “독일 국민은 유대계 주민에 대한 박해를 용인했다. 홀로코스트로까지 발전했지만 히틀러에 대한 지지는 계속됐다”고 썼다. 맹목적인 정권 지지자들은 반정권 운동에 나선 용기 있는 이들에 대한 테러를 ‘성전(聖戰)’처럼 여기며 정의를 지킨다는 거대한 착각에 빠져 있었다고 지적한다.
야만의 시대에 “어떻게 사는 것이 옳은 것인가”라는 실존적인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진 끝에 행동에 나선 용기 있는 이들의 이야기는 양심이란 무엇인지 근원적인 고민을 하게 만든다. 동시에 지도자에 대한 비이성적인 지지가 낳은 대중독재의 민낯을 보여주며 지금도 여전한 광적인 정치 팬덤에 경종을 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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