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박 2년을 걸려서 내가 편집한 책이 곧 출간된다. 책을 기획할 때, 계약할 때의 설렘은 벌써 아련하다. 이 책을 만들면서 가장 떨렸던 순간은 ‘감사의 말’ 원고가 들어온 때다. 저자가 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세상의 모든 편집자가 품고 있는 궁금함이다.
‘내 논문을 대중서로’는 한국 미술사에 관한 연구를 여러 권의 단행본으로 펴낸 미술평론가 손영옥이 자신의 단행본 출간 노하우를 풀어낸 책이다. 베테랑 저자는 편집자의 역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초고에 편집자가 빨간 줄을 북북 긋고 문장을 고쳐서 보내오더라도 주눅들 필요가 없습니다. 이러이러한 방향으로 수정해 달라고 요구해도 기분 나빠할 일이 아닙니다.” 미래의 저자를 북돋우고 현실의 편집자를 안도시키는 산뜻한 태도다.
학계에서는 논문 평가가 질보다 양에 좌우되고, 출판 시장에서는 학술서가 갈수록 팔리지 않는다. ‘팔아야 한다’는 압박과 연구 내용을 널리 알리고 싶다는 욕망의 교차로에서 논문을 대중서로 변신시키는 방법에 대한 연구자와 편집자의 관심이 커지고 있다.
푸른역사는 ‘미쳐야 미친다’(정민·2004년), ‘병자호란’(한명기·2013년) 등 학문적인 근거를 갖춘 교양서를 오래 펴낸 출판 명가다. 같은 출판사에서 ‘미술시장의 탄생’(2020년)을 낸 손영옥은 편집자 박혜숙과 2인 3각으로 뛰면서 검증한 열여덟 가지 ‘꿀팁’을 공유한다.
첫 번째 팁은 요리사처럼 생선의 몸통 내놓기다. 논문에서 선행 연구나 방법론 등을 다루는 서론, 전체 요약인 결론을 떼고 본론에서 책을 시작해야 한다. 이제나저제나 독자가 기대하는 것은 콘텐츠, 즉 내용이기 때문이다. 생선 머리와 꼬리는 버리지 말고 국물 내는 데 알뜰하게 쓰면 된다. 서론과 결론에 있는 중요한 이야기는 본문에 녹여 넣으라는 이야기다. 이처럼 쉬운 비유와 구체적인 예시를 갖춘 글쓰기 지침이 이 책의 몸통이다.
화룡점정인 후반부 ‘원고를 넘기고 나서’의 실제 편집자의 교정교열 사례를 보자. “전체적으로 앞에서 언급된 내용과 중복된 부분이 상당함. 대대적 정비 필수.” 세상의 모든 저자가 괴로워하는 대대적 수정을 존댓말 없이 요청하고 있다! “플라스틱 모형 장난감을 가지고 소꿉놀이했던 여성”이라는 구절은 편견을 담고 있으니 ‘여성’을 ‘사람’으로 바꾸자는 제안도 있다. 편집의 전문성을 이해하는 저자는 주눅 들거나 기분 나빠하지 않고 수정 요구를 기꺼이 받아들인다. 편집자와 저자가 펼치는 대나무숲 속 무술 같은 대목이다.
손영옥은 편집자가 코치와 같다고 쓴다. 저자는 운동선수이고, 경기 결과의 영광은 그 그늘까지도 선수의 것이다. 그리고 코치는 선수를 돕는 전문가다. 내가 받은 ‘감사의 말’ 또한 나를 코치로 여기고 있다. 이제 그 의미를 자만도 겸손도 없이 이해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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