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이코노미스트가 매년 발표하는 ‘세계식량안보지수’에서 지난해 한국은 32위였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가운데 꼴찌 수준이다. 일본이 매년 10위권을 웃도는 반면 한국은 2017년 24위에서 2019년 29위로 계속 하락하고 있다. 인구 증가나 재해, 전쟁 등 식량위기 상황을 대비해 적정량의 식량을 비축하는 전략이 없는 데다 식량안보를 전담하는 주무 부처조차 없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신간 ‘식량위기 대한민국’(웨일북)을 20일 출간한 남재작 한국정밀농업연구소장(54)은 29일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미국과 유럽, 중국, 일본을 비롯한 강대국들은 기후변화에 따를 식량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백년대계(百年大計)를 세우고 있는 반면 한국에선 식량안보라는 의제 자체가 생소한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식량위기는 더 이상 아프리카 등 개발도상국이 겪는 남의 나라 얘기가 아닙니다. 곡물자급률이 20% 미만인 한국이 10년 안에 겪게 될 문제일 수 있어요.”
밀 자급률이 0.7%에 불과한 한국은 연간 소비하는 350만 t의 밀을 미국, 호주, 우크라이나 등에서 수입해 왔다. 하지만 지난해부터 이어진 가뭄으로 미국의 곡물 생산량이 40%가량 감소한 데다 우크라이나 전쟁까지 겹치며 식탁 물가가 폭등했다. 호주는 3∼5년마다 흉년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남 소장은 “가뭄과 산불, 전쟁 등 글로벌 위기가 겹겹으로 발생한다면 식탁 물가는 언제든 위협받을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말했다.
해결책은 식량자급률을 끌어올리는 것이지만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국내 농경지는 매년 1∼2%가량 감소하는 추세다. 남 소장은 가장 큰 난관으로 지방소멸을 꼽는다. 그는 “2020년 기준 농가의 70%는 농업으로 얻는 소득이 1000만 원 미만이다”라며 “농경지뿐 아니라 농촌 인구가 지속적으로 감소하는 현실을 고려하면 식량자급률은 지금 수준의 저지선을 구축하는 것도 쉽지 않다”고 했다. 이 때문에 글로벌 곡물 공급망을 다변화해 식량위기에 대응하는 전략을 세워야 한다고 조언했다. 세계 각국의 향후 5∼10년 식량 생산량을 미리 예측해 선제적 계약을 체결하는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는 것이다.
남 소장은 “진정한 위기는 우리가 타 국가의 식량 생산량과 비축량을 전혀 알지 못할 때 발생한다”고 경고했다. 세계 각국은 향후 100년을 내다보며 식량안보 체계를 구축하고 있다. 미국은 항공우주국(NASA)이 농업 관련 인공위성을 활용해 세계 주요 작물의 재배 면적을 추정해 생산 현황을 분석해 왔다. 중국은 2017년 국영 화학 기업 켐차이나를 통해 스위스 다국적 종자 기업 신젠타를 430억 달러에 인수하며 발 빠르게 대응했다. 한국은 2025년에야 농림업에 활용할 중형 과학위성을 쏘아 올린다. 남 소장은 “더 늦기 전에 식량안보를 국가적 어젠다로 격상시켜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글로벌 시대 식량위기는 농림축산식품부뿐만 아니라 외교부와 기획재정부가 참여해 해결해야 하는 범정부 차원의 문제입니다. 여러 부처를 아우르는 식량안보기구를 구성하는 것이 식량위기에 대비하는 첫걸음이 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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