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언어가 울려 퍼졌다. 모르는 시어는 음악처럼 들렸다. 서울 마포구의 한 카페에서 7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시집 ‘그 여자는 화가 난다’를 읽어 내려간 이는 덴마크 작가 마야 리 랑그바드다. 그는 1980년 한국에서 태어나 덴마크에 입양됐다. 2007∼2010년 서울에 살며 자신처럼 다른 나라로 입양됐던 이들을 인터뷰했다. 이를 바탕으로 2014년 덴마크에서 시집을 펴냈고 8년 만에 한국에 책을 번역 출간한 기념으로 시를 낭독한 것이다.
그는 시를 통해 국제 입양 실태에 대해 화를 낸다. 입양기관이 버려진 아이들을 해외에 입양시키는 일로 많은 돈을 버는 현실에 분노한다. 정부가 묵인한 국제입양을 비판적으로 바라본다. 그는 “자신이 (한국의) 수출품이었기에 화가 난다”고 토로한다. “어린이를 입양 보내는 국가는 물론 입양기관도 국가 간 입양을 통해 돈벌이를 한다는 사실에 화가 난다”고 말한다.
물론 그 역시 입양 제도에 일부 긍정적인 효과가 있다는 사실을 안다. 버려진 아이들에겐 가정이 필요하고, 피치 못할 이유로 아이를 입양시켜야 하는 부모의 마음도 이해한다. 자신 역시 그렇게 살아남았으니까.
하지만 그는 자신이 입양 실태에 대해 비판하지 못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는 “아직도 입양은 아이들을 위해 부모를 찾아주는 일보다 부모들을 위해 아이를 찾아주는 일을 우선한다”고 주장한다. 또 미혼모에 대한 경제적 지원보다 입양이 더 장려된다고 지적한다. 그는 자신의 분노가 깊은 슬픔의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분노를 통해 부조리한 현실을 개선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렇기에 그는 “화가 난다”고 반복해 외친다.
“제가 입양되지 않았다면 길에서 살았을 수도 있다는 걸 알아요. 그래서 항상 입양됐다는 것에 감사하길 요구받았죠. 하지만 그렇다고 입양 제도에 대해 분노하지 못할 이유는 없습니다. 건강하게, 입체적으로 분노할 수 있습니다. 모든 변화의 시작은 분노니까요.”
그의 시집은 제75회 칸영화제 남우주연상(송강호) 수상작인 영화 ‘브로커’의 대척점에 있다. ‘브로커’는 베이비박스에 버려진 아기를 빼돌려 파는 브로커들의 이야기다. 영화는 아기를 버릴 수밖에 없는 처지에 처한 엄마 소영(이지은)에게 관심을 기울인다. 보육원 출신 동수(강동원)가 소영의 힘든 처지를 바라보며 자신을 버린 엄마를 이해하는 모습도 보여준다. 영화가 말하려 하는 건 입양을 보내는 부모와 버려진 아이의 화해다.
그러나 이 시집을 읽다 보면 입양아들에게 가장 필요한 건 분노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상처를 지닌 이들에겐 화를 낼 시간이 필요하다. 슬픔을 토로할 언어가 필요하다. 분노가 먼저이고 그 이후에 이뤄져야 할 일이 화해가 아닐까. 섣부른 화해보다 올바른 분노가 입양아를 이해하는 키워드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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