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8년 영국령 서인도제도 바베이도스의 페이스 농장. 종신 노예 신분인 흑인 남자아이 조지 워싱턴 블랙이 태어났다. 그의 삶은 예기치 못한 폭력과 자유의 박탈로 점철됐다. 페이스섬의 한 노예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을 때 주인은 그 노예를 “도둑놈”이라고 말한다. “노예는 내 소유물인데 자살을 했으니 내 것을 훔친 셈”이라는 궤변. 조지는 폭력에서 끈질기게 살아남는 독함과, 숨조차 마음대로 쉬지 못하는 연약함을 동시에 안고 자란다.
책은 청년 조지가 페이스 농장에서부터 미국 버지니아주와 북극, 캐나다를 돌아다녔던 삶의 여정을 회고 형식으로 다룬 소설. 나치 점령기 흑인 뮤지션의 삶을 그린 ‘혼혈 블루스’(2011년)로 부커상 최종 후보에 오르고, 캐나다 최고 문학상 길러상을 수상한 저자는 인종차별의 폭력성과 인간이 지닌 자유의지를 섬세한 묘사로 그려낸다. 이 책으로 저자는 두 번째 길러상을 받았고, 부커상 최종 후보에 올랐다.
소설에서 티치와의 만남은 조지의 삶에 변곡점이 된다. 티치는 페이스 농장주의 남동생으로, 부와 권력을 지닌 백인 남성. 하지만 돈보다 호기심을 좇는 발명가 기질, 노예제 폐지를 주장하는 혁신적 사상으로 주류 사회에 속하지 못한다. 열기구를 발명하는 데 골몰하는 티치는 명석해 보이는 조지를 조수로 쓴다. 두 사람은 함께 개발한 열기구를 타고 농장에서 도망친다. 두 사람이 서로에게 채워진 족쇄로부터 해방되고자 힘을 합치는 과정은 통쾌하기도, 절박하기도 하다.
조지는 “티치가 원하는 곳이면 어디든 갈 거예요”라며 티치를 따라다니지만 타인에게 끌려 다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는 누구를 만날지, 어떤 일이 펼쳐질지 모르는 ‘미정’의 상태에서 자유의지를 발휘하는 방법을 배운다. 티치와 이별한 뒤 캐나다 노바스코샤주에서 만난 소녀 태나와 바다의 생물을 탐구하고 이를 그림으로 그리며 생애 처음 사랑을 경험하는 과정은 그림자 같은 존재였던 흑인 노예가 자유인으로 다시 태어나는 과정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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