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저도 죽게 되면 야스쿠니에 갈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은 있었지요. 역시 그런 교육을 받았으니까, 자연히 그렇게 생각되는 거 아닙니까? 역시… 그게 군인이라면 정말 ‘반드시 죽는다’라는 그런 게 이미 있었으니까요. 살아서 돌아온다는 생각은 거의 하지 않았어요.”
한반도를 비롯한 동북아시아를 고통에 빠뜨렸던 일본 제국주의. 그들은 자국 이익을 위해 이웃 나라 국민을 무참히도 괴롭혔다. 하지만 제국의 영광이란 기치 아래 평범한 일본인도 행복했을까. 아니, 행복하다고 생각했다면 그건 진실이었을까.
이 책은 현재 일본에서 박사 과정을 밟고 있는 저자가 썼던 논문을 재구성했다. 저자는 일제 당시 군인으로 복무하거나 근로봉사에 동원됐던 생존 일본인 3인을 심층 인터뷰했다. 그 구술을 받으며, 저자는 우리를 괴롭힌 악질 전범자가 아니라 역사의 소용돌이에 휘말린 또 다른 희생자들을 마주한다.
집에도 알리지 않고 자원입대한 기시 우이치 씨. 당시 일제는 아들이 입대하면 온 가족이 기뻐했다고 선전했지만 실상은 달랐다. 어머니는 말없이 눈물만 흘렸고, 아버지는 “살아 돌아오라”며 입을 닫았다. 그렇게 들어간 군대는 첫날부터 상상과 달랐다. 구타가 끊기는 날이 하루도 없었다. 그리고 다들 자연스레 알게 됐다. 일본은 전쟁을 이길 수 없고, 우리는 모두 죽을 것이란 걸.
“이제 언제 어느 때 죽을지 모르니까 (…) 기지를 나올 때 모두 전날 밤에 한잔해요. 이별의 술잔이네요. 그런 식으로 가는 거지만, 역시 죽는다는 것을 아니까요. 그건 가엾은 것이라고요.”
책은 역사서답지 않게 술술 읽힌다. 생존자들 얘기에 얽힌 배경 설명도 친절한 편.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찾으려 한 저자의 노력도 상당히 수긍이 간다. 다만 내용이 다소 기시감이 없진 않다. 전쟁을 겪은 여성의 시각도 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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