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8년 5월 7일 중국 창사의 조선혁명당 당사인 난무팅(남목청)에 한 청년이 들이닥쳐 권총을 난사했다. 그 총알 하나가 백범 김구 선생(1876~1949)의 가슴을 파고들었다. 곧장 병원으로 실려 간 백범의 상태를 보고 의사는 “가망이 없다”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하지만 3시간 뒤에도 백범은 숨을 거두지 않았고, 치료를 받아 기적적으로 목숨을 구했다. 한 달 뒤 퇴원한 백범의 몸에는 탄환이 그대로 남았다고 한다.
당시 백범을 저격한 이는 조선혁명당원인 이운환. 백범은 이운환 배후에 밀정인 박창세가 있을 것으로 봤다. 이운환의 단독범행이 아니라 일제가 암살을 사주했단 의심이다. 백범은 “내 심장에는 조선 놈이 쏜 왜적의 탄환이 아직도 박혀 있다. 단군 할배의 피를 가진 놈이면 왜적의 개질을 하는 놈이라도 나를 해하지 못 한다”고 했다.
신간 ‘제국의 암살자들’은 1935~1938년 세 차례에 걸쳐 백범을 암살하려 했던 사건을 다뤘다.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연구교수인 저자는 백범을 암살하기 위해 일제가 벌인 비밀공작을 담은 문서를 일본 야마구치 현 문서관에서 확인했다. 책은 저자가 이를 바탕으로 쓴 논문 ‘일제의 김구 암살 공작과 밀정’을 재구성했다.
자칫 딱딱할 수 있는 논문과 달리, 한때 변절자가 돼버린 밀정들과 백범의 지난한 분투를 영화 ‘암살’(2015년)처럼 생생하게 그려냈다. 1935년 1월 중국에서 독립운동을 하다 밀정이 된 오대근은 “백범이 중국 난징에 머문다”는 첩보를 입수하고 중국 공작원 2명과 난징으로 간다. 하지만 오대근은 “백범이 난징에 오지 않았다”는 후속 첩보를 입수하곤 혼란에 빠진다. 이는 백범이 일부러 가짜 정보를 흘려 암살 계획을 무용지물로 만든 것이었다.
신간 ‘도조 히데키와 제2차 세계대전’은 일제를 또 다른 측면에서 살펴본다. 일본 저널리스트인 저자는 6년 동안 관련 사료를 추적해 일제 영웅으로 추앙받다 패전 뒤 처형당한 도조 히데키(1884~1948)의 삶을 입체적으로 들여다봤다.
도조는 1936년 군의 정치 개입을 강화하고 1938년 국가총동원법을 제정해 일제 제국주의 전쟁을 이끈 장본인. 1942년 수상 겸 육군참모총장까지 되며 일본을 파국으로 이끈다. 하지만 저자는 도조의 성패를 개인이 벌인 일탈로 봐선 안 되며, 일본 군국주의가 만든 산물이란 점을 강조한다. 정치인을 꿈꿨던 도조가 아버지의 조언에 따라 육군사관학교에 들어간 건, 군인 출신들이 국가 지도층을 장악하고 있는 당시 정세로 인한 것이었다.
그런 도조는 죽음 직전, 시 ‘홀로 길게 드리운 서리 내린 밤의 그림자’를 언급했다고 한다. 사형선고를 받은 그가 인생을 달빛에 비친 그림자로 비유한 시를 떠올린 이유가 뭘까. 여기엔 결국 마지막에 이르러 자신의 인생을 긍정하기보다는 허무함에 가득 찼던 도조의 심경이 담겼다고 저자는 해석한다.
1948년 12월 23일 도조는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약 6개월 뒤인 1949년 6월 26일 백범은 안두희의 총에 맞아 쓰려졌다. 같은 시대를 살다 비슷한 시기에 세상을 떠난 두 사람. 8·15 광복절을 맞아 그들은 어찌 이리도 다른 인생을 살게 됐는지 되짚어보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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