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3월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에서 150km 떨어진 도시 체르니히우가 러시아의 폭격을 당한 날, 평범한 직장인 나탈리아 쉐레메타는 급하게 가방 하나만 챙겨 영국 런던으로 탈출했다.
2014년 크림반도 위기 때부터 전장에서 우크라이나군의 저격수로 활동했던 올레나 빌로제르스카. 10년간 기자로 일한 그는 러시아의 주 타깃이다. 전쟁이 발발한 후 많은 사람들은 일상의 붕괴와 운명의 변화를 겪고 있다.
책은 인터뷰 모음집이다. 인터뷰 대상은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에서 전쟁을 직접 겪거나 폴란드 벨라루스 카자흐스탄 튀르키예(터키) 영국 미국 등 멀리서 전쟁을 겪은 17명의 여성이다. 폭격으로 난민이 된 우크라이나 전직 리듬체조 국가대표와 생판 몰랐던 난민에게 기꺼이 집을 제공한 영국 싱어송라이터, 전쟁을 일으킨 조국에 반대해 반전 시위에 나선 러시아 출신 바이올리니스트 등의 사연이 담겼다. 전쟁의 비극 앞에 선 여성들은 고통과 슬픔을 느끼는 동시에 극복해낼 의지와 용기, 연대의 필요성을 이야기한다.
문답식 혹은 날짜별 일기 형식으로 인터뷰를 기록한 저자는 윤문과 재해석을 최소화하고 전달과 기록에 초점을 맞췄다. 전쟁에 대한 개인의 아주 사적인 이야기들이 굴절 없이 담겼다.
두 저자는 유럽과 중앙아시아 등 여러 국가에 거주한 경험이 있고, 현재 영국에 사는 한국인이다. 서문에는 프로젝트를 시작한 계기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전쟁터의 생생한 목소리를 듣는다면 전쟁과의 거리를 좁힐 수 있을까? 전쟁의 폐해를 머리로, 가슴으로 느끼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늘어난다면 전쟁을 피할 수 있을까?” 다행히 취지에 공감하는 이들이 많았다. 전쟁 중에도 기꺼이 인터뷰에 응한 17명의 여성은 공통적으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침묵으로만은 표현할 수 없는, 반드시 글로 남겨야 하는 이야기가 제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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