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픔을 기쁨으로 위로한 ‘잡스 터틀넥’ 디자이너 이세이 미야케 [영감 한 스푼]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8월 13일 11시 00분


옷은 천 한 조각에서 시작한다
예술성 인정받은 이세이 미야케 디자인


안녕하세요,

오늘은 8월 5일 조용히 세상을 떠난 디자이너 이세이 미야케의 작품 세계를 돌아보는 시간을 마련했습니다. 이세이 미야케는 스티브 잡스의 상징과도 같은 터틀넥 니트는 물론, 주름을 활용한 실용적인 옷 라인 ‘플리츠 플리즈’, 그리고 한국인에게도 인기인 ‘바오바오백’으로 유명하죠. 그런데 그의 옷들은 단순한 패션 디자인을 넘어 예술의 경지로도 인정받았다는 사실 알고 계셨나요? 그 자세한 이야기를 들려드리겠습니다.

또 방탄소년단(BTS)의 후원으로 전시를 열어 한국에도 잘 알려진 조각가 안토리 곰리가 영국 캠브리지대학 캠퍼스 내에 앨런 튜링을 기리는 조각을 설치하게 된다는 소식도 전해드립니다. 당초 곰리의 조각에 대해 ‘오래된 건물인 캠퍼스의 역사성을 해친다’는 논란이 일었는데요. 이에 대해 테이트 모던, 테이트 브리튼 미술관 관장이 안토니 곰리를 지지하는 설명을 발표하는 등의 진통 끝에 설치 허가를 받았다고 합니다.

‘옷은 천 한 조각으로 시작된다’…예술성 인정받은 이세이 미야케의 디자인:

세계적인 디자이너 이세이 미야케가 8월 5일 세상을 떠났습니다. 자신의 이야기를 거의 하지 않기로 유명했던 그는 죽음조차 뒤늦게 조용히 알렸고, 공개적인 추모회나 장례식도 열리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생전 그의 디자인은 패션 역사상 최초로 미국의 예술 매거진 ‘아트포럼’의 표지를 장식했고, 뉴욕 현대미술관(MoMA)과 메트로폴리탄미술관, 영국 빅토리아앨버트뮤지엄에 소장되며 예술의 경지로 인정받았습니다.

수학자 앨런 튜링 기리는 안토리 곰리 조각작품, 왜 논란 되었을까?:

영국의 현대미술가 안토니 곰리가 영국 캠프리지 대학 킹스컬리지 캠퍼스 내에 수학자 앨런 튜링을 기리는 조각 작품을 만들고 있습니다. 앨런 튜링은 컴퓨터 과학의 아버지이자, 동성애자로서 정체성으로 고통받다 독이 든 사과를 먹고 사망했다는 설이 있습니다. 이 때문에 애플의 로고가 튜링을 의미한다는 루머도 있는데요. 이런 튜링의 조각상
이 왜 논란이 되었을까요?


○ ‘옷은 천 한조각에서 시작한다’…예술성 인정받은 이세이 미야케의 디자인
1993년 프랑스 파리에서 가을/겨울 기성복 컬렉션을 선보이고 있는 디자이너 이세이 미야케. 사진: AP Photo/Lionel Cirroneau, File
1993년 프랑스 파리에서 가을/겨울 기성복 컬렉션을 선보이고 있는 디자이너 이세이 미야케. 사진: AP Photo/Lionel Cirroneau, File


‘천 한 조각’(A-POC; A Piece of Cloth)의 예술

주름이 생길 수 없는, 어디에나 어울리는 혁신적인 옷: 이세이 미야케의 디자인으로는 주름진 천으로 만든 옷 ‘플리츠 플리즈’ 라인이 유명합니다.

▶ 이 옷은 1988년 미야케가 뜨거운 열을 이용한 여러 기술을 연구한 끝에, 2-3배 큰 옷을 압축해 영구적인 주름을 만들면서 시작됐습니다.

▶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독특한 디자인으로 휴양지는 물론 세련던 디너나 오피스에서 어울리는데다, 주름도 가지 않아 아무렇게나 보관해도 걱정이 없고 세탁기로 세척이 가능한 혁신적인 옷이었죠.

혁신가 스티브 잡스의 눈에 띄다: 스티브 잡스가 기술 혁신을 이용해 ‘스마트폰’이라는 전에 없던 발명품을 만들었듯이, 이세이 미야케도 장식이나 디자인보다 옷의 본질을 고민한 사람이었습니다.

▶ 그가 만든 소니 직원들의 유니폼을 눈여겨 본 잡스는 애플을 위해서도 유니폼을 만들어 달라고 미야케에 제안하고, 그 뒤로 두 사람은 수십 년이 넘는 우정을 유지하게 됩니다.

▶ 잡스는 결국 미야케가 디자인한 검은 터틀넥 셔츠를 20년 넘게 입습니다. 미야케는 잡스에게 이 터틀넥을 100여 개 만들어 주었다고 하네요. 잡스의 옷장엔 이 검은 터틀넥이 가득했다고 합니다.

천 한 조각의 무한한 가능성: 이세이 미야케는 생전 ‘패션’이라는 말을 싫어했습니다. 한 때 유행하고 마는, 기분에 따른 무언가가 아니라 사람이 입는 옷이라는 본질에 다가가고 싶어했기 때문이죠.

▶ 이런 고민의 일환으로 2000년 즈음 그는 ‘천 한 조각’(A-POC;A Piece of Cloth)이라는 브랜드를 만듭니다. 커다란 천 한조각을 입는 사람이 자신의 몸에 맞게 미리 만들어진 선을 따라 잘라 입는 옷입니다.

▶ 이런 미야케와 친했던 건축가 안도 타다오는 “미야케는 천 한 조각의 무한한 가능성을 끈질기게 탐구했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 3-D 프린팅 같은 개념이 등장하기 전부터 옷의 새로운 방식을 제시한 이 디자인은 뉴욕 현대미술관(MoMA), 영국 빅토리아앨버트박물관, 메트로폴리탄박물관 등 세계 주요 미술관과 박물관의 소장품이 되었습니다.

A-POC 시리즈를 설명하는 영상. 출처: 이세이 미야케 인코퍼레이티드 웹사이트
A-POC 시리즈를 설명하는 영상. 출처: 이세이 미야케 인코퍼레이티드 웹사이트


지금의 이세이 미야케를 만든 것들

평범한 사람을 위한 아방가르드: 2015년 요미우리신문과 인터뷰에서 이세이 미야케는 “돈 있는 사람들만을 위한 것을 만들고 싶지 않았다. 티셔츠나 청바지처럼 수많은 사람들이 편하게 느끼는, 빨기도 쉽고 입기도 쉬운 그런 것을 만들고 싶었다”고 말합니다.

▶ 그의 말처럼 이세이 미야케의 디자인은 ‘대중을 위한 아방가르드’라는 평가를 받으며, 패션 디자인으로는 최초로 1983년 미국의 예술 매거진 ‘아트포럼’의 표지를 장식했습니다.

“파리 68혁명을 보고, 보통 사람의 시대가 열렸음을 깨달았다”: 미야케는 패션학교를 졸업하고 1960년대 프랑스 파리에서 기 라로쉬, 지방시 스튜디오에서 일하게 됩니다.

▶ 이 때 그는 “수퍼 리치와 전 세계 정치 지도자의 아내 등 대단한 고객들을 보면서 이런 문화에 익숙지 않은 내겐 패션 산업에서 미래가 없겠다고 생각했다”고 생각했습니다.

▶ “그런데 파리 68혁명을 직접 목격하면서, 새로운 시대, ‘보통 사람’의 시대가 열렸음을 깨닫고 새로운 가능성을 보게 됐다”고 말했습니다.

바닥에 놓여 있을 때는 납작한 천 조각이지만, 펼치면 옷이 되는 이세이 미야케의 디자인. 1990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스테델릭미술관에서는 이세이 미야케의 디자인을 마네킹에 입혀서가 아니라, 바닥에 눕힌 채로 전시했다. 사진출처: 이세이미야케 웹사이트
바닥에 놓여 있을 때는 납작한 천 조각이지만, 펼치면 옷이 되는 이세이 미야케의 디자인. 1990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스테델릭미술관에서는 이세이 미야케의 디자인을 마네킹에 입혀서가 아니라, 바닥에 눕힌 채로 전시했다. 사진출처: 이세이미야케 웹사이트


과거에 갇히고 싶지 않다…밝은 미래를 이야기한 낙천주의자

뒤늦게 털어 놓은 히로시마 원폭 피해: 미야케가 이렇게 ‘평범한 사람’, ‘천 한 조각’ 등 본질에 집착하는 이유 중 하나는 과거의 아픈 기억입니다.

▶ 1938년 히로시마에서 태어난 그는 7살 때 미국의 원자폭탄 투하를 경험합니다. 그 후유증으로 평생 다리를 절었고, 3년 뒤 어머니는 세상을 떠났죠.

▶ 그럼에도 미야케는 ‘원폭 피해를 극복한 디자이너로 비춰지고 싶지 않다’며 이 사실을 침묵하다 2006년 뉴욕타임스 기고문을 통해 자신이 겪었던 고통을 털어놨습니다.

“눈을 감으면, 누구도 경험해서는 안 될 것들이 내 눈앞에 펼쳐진다. 선명한 붉은 빛과 그 뒤로 이어지는 검은 구름. 재앙에서 탈출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달려가는 사람들. 나는 이 모든 것을 기억한다. 나는 이 기억들을 잊어버리려 했지만 실패했다. 그 대신 파괴되는 것이 아니라 만드는 것, 아름다움과 기쁨을 가져다 주는 것에 대해 생각하기로 했다. 내가 옷을 디자인하게 된 것은 그것이 현대적이고 낙천적인 창조의 형태였기 때문이다.”

내 옷을 입었을 때 사람들이 기뻐하길 바란다: 작게는 빨래나 구겨질 걱정 없이, 크게는 장소나 분위기에 상관 없이 즐겁게 입을 수 있는 옷을 남기고 이세이 미야케는 세상을 떠났습니다. “내게 가장 큰 관심사는 사람이다”라거나, “내 옷을 입었을 때 사람들이 기뻐하길 바란다”는 그의 마음은 어쩌면 사랑하는 사람들이 겪었던 고통에 대한 마음 넓은 위로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1998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전시 ‘Making Things’에 참가한 이세이 미야케. 사진: AP Photo/Michel Euler, File
1998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전시 ‘Making Things’에 참가한 이세이 미야케. 사진: AP Photo/Michel Euler, File



○ 논란 끝에 설치 허가 받은 안토니 곰리 조각
영국 캠브리지대학에 설치될 앨런 튜링 조각상 예상도. 사진출처: 캠브리지 시티 카운슬, 안토리 곰리 스튜디오
영국 캠브리지대학에 설치될 앨런 튜링 조각상 예상도. 사진출처: 캠브리지 시티 카운슬, 안토리 곰리 스튜디오


한국의 일부 컬렉터들에게도 익숙한 영국 조각가 안토니 곰리의 작품이 우리 지역에 설치된다면 여러분은 어떤 생각이 드시나요? 우선 일상에서 좋은 예술가의 작품을 쉽게 볼 수 있어서 기쁠 것이고, 또 그의 작품을 보려는 사람들이 지역을 찾게 된다는 생각에 설렐 수도 있겠습니다. 그런데 영국 캠브리지대학이 곰리의 조각을 설치하려다 논란을 겪었다고 합니다.

앨런 튜링 기리는 조각, 역사적 경관을 해친다?!

1930년대 킹스컬리지에서 공부했던 앨런 튜링: 앨런 튜링은 전자수학 머신을 개발해 제2차 세계대전 때 독일군의 암호를 해독한 천재 수학자이자, 이 머신을 더 발전시켜 컴퓨터의 초기 형태를 만든 선구자입니다. 그가 1930년대 공부했던 영국 캠브리지대 킹스컬리지 캠퍼스에 조각상이 설치될 예정입니다.

캠브리지시에 제동 건 문화재청: 이 계획이 알려진 2020년, 잉글랜드 문화재청(Historic England)은 조각상 설치 계획에 반대 의견을 표명합니다. 이유는 킹스컬리지 캠퍼스의 역사적인 경관을 해칠 우려가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곰리 옹호 나선 영국 미술계: 그러자 영국 미술계의 권위있는 인사들이 곰리의 조각을 옹호하는 성명문을 발표했습니다. 프란세스 모리스 테이트 모던 미술관장, 알렉스 파카슨 테이트 브리튼 미술관장 등이 공개서한을 냈고, 팀 말로 전 로열아카데미 디렉터도 “곰리를 선택한 것은 선견지명을 갖춘 조치”라고 옹호했습니다.

2년 만에 허가 결정 내린 캠브리지시: 결국 캠브리지시는 처음 계획이 알려지고 2년이 지난 올해 8월 3일, 곰리의 조각 설치를 허가하기로 했습니다. 캠브리지대학 교무처장 마이클 프록터는 “우리 대학의 관용적, 개방적 마인드와 지적 환경 덕분에 튜링은 스스로 온전한 삶을 살았으며, 이를 통해 그가 근대 컴퓨터와 과학에 미친 지대한 영향을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한다”며 “이 조각이 많은 관심과 기쁨을 주길 바란다”고 밝혔습니다.

도심에 설치된 안토니 곰리의 조각 작품
도심에 설치된 안토니 곰리의 조각 작품


찬반 논리는?

역사적 경관을 해친다: 잉글랜드 문화재청의 입장은 오랜 시간 동안 캠퍼스 내 건물과 풍경이 만들어왔던 이곳만의 독특한 풍경을 곰리의 조각상이 해칠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현대 조각은 고딕 건물과 어울리지 않는다: 영국의 한 평론가는 ‘곰리의 조각은 도시 풍경에 잘 어울리고, 캠브리지대의 고딕 양식 건물에는 잘 어울리지 않는다’는 의견을 내기도 했습니다.

서로 다른 양식의 흥미로운 대화: 반면 프란세스 모리스 테이트 모던 미술관장은 “캠퍼스 내 서로 다른 건축적 스타일 가운데 곰리의 조각이 흥미로운 대화를 이끌어 낼 것”이라는 전혀 반대의 입장을 내놓았습니다.

앞서가는 예술가의 매우 적절한 헌사: 알렉스 파카슨 테이트 브리튼 미술관장은 영국 조각가로서 곰리의 명성에 힘을 실어주며 “우리 시대의 앞서가는 예술가가 위대한 수학자를 기리는 매우 적절한 헌사”라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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