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립 바티카 ‘멍 때리기’전 등 사운드가 주체인 전시 잇달아
“날것에 집중하면서 성찰 유도”
돌길처럼 만들어놓은 미로. 발걸음을 떼자 어디선가 종소리가 들린다. 옆에 무심히 놓인 헤드폰. 그걸 쓰면 전시관 문 여닫는 소리와 관객들 발자국 소리가 가득하다. ASMR(자율감각 쾌락반응)처럼 잔잔하긴 한데…. 이걸 미술 전시라 부를 수 있을까.
최근 ‘사운드 전시’가 관심을 모으고 있다. 말 그대로 회화나 조형물이 아닌 소리가 전시의 주체다. 이미 미디어아트 등을 통해 영상이나 음악 또한 미술의 주요 요소로 인식되긴 해도, 오롯이 소리로만 전시를 구성한다는 건 여전히 낯설다.
서울 마포구 대안공간루프에서 다음 달 8일까지 열리는 캐나다 출신 ‘사운드아티스트’ 필립 바티카의 개인전 ‘멍 때리기’가 대표적이다. 돌길이 설치돼 있긴 하나, 소리에 집중하길 권한다. 최근 내한한 바티카는 “전시된 소리는 재료에 가까워 성찰을 유도한다. 날것의 소리에 집중해 공간과 현재에 집중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바티카는 한국인이 유튜브에서 ASMR에 열광하는 모습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한다.
서울 동대문구 동대문디지털플라자에서 15일까지 열리는 ‘가장 조용한 집’은 마음 편히 볼만하다. 전북 무주에 있는 귀틀집에서 채집한 소리를 담아 풀벌레 소리와 바람에 나뭇잎 부딪히는 소리 등이 귀를 간질였다. 전시를 기획한 아티스트 그룹 ‘녹음’과 ‘수무’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인간에게 던진 경고를 계기로 자연과 어우러지는 삶을 모색했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소리가 미술의 영역인지 아닌지에 너무 얽매이지 말라고 당부한다. 양지윤 대안공간루프 디렉터는 “예술가들이 생산하고 활용한 소리를 들으며 즐거움을 느끼면 그걸로 충분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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