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재수사’ 출간한 장강명
오피스텔서 발생한 ‘미제 살인’, 현직 형사들 인터뷰하며 집필
사법체계 등 사회고민도 담아
“우린 외환위기후 불안한 삶… 새 사상-생각 필요한 시대”
소설가 장강명. 작가 제공
2000년 8월 서울 서대문구 신촌 뤼미에르 빌딩. 한 오피스텔에서 여대생 민소림이 숨진 채 발견된다. 빌딩 폐쇄회로(CC)TV엔 모자를 깊게 눌러쓴 남성이 찍혔고, 방엔 신원 미상자의 DNA가 남았다. 친구와 주민, 전과자 등 1000명도 넘게 용의선상에 올랐지만 끝내 범인은 잡지 못했다. 22년 뒤, 서울경찰청 강력범죄수사대(강수대)는 이 사건을 재수사하기로 하는데….
22일 출간된 두 권짜리 장편소설 ‘재수사’(은행나무·사진)를 쓴 장강명 작가(47)는 이날 전화인터뷰에서 “야심이 커서 힘을 ‘빡’ 주고 쓴 작품”이라며 “오래 쓰다 보니 분량이 가장 긴 소설이 됐다”며 웃었다. 지금껏 그가 쓴 긴 장편은 200자 원고지로 1750장인 ‘우리의 소원은 전쟁’(위즈덤하우스·2016년). ‘재수사’는 3100장이다. 해마다 한 권 이상 책을 냈던 그가 6년 만에 장편을 내놓은 이유가 납득됐다. “2019년부터 쓰기 시작했는데, 1600장가량 되는 1권을 갈아엎을 정도로 슬럼프도 겪었다”고 했다.
“강수대에서 일한 적 있거나 지금도 범인을 쫓는 현직 형사들을 인터뷰했어요. 묵직한 내용을 담고 싶었는데 재능이 없어서 고생했습니다, 하하.”
소설은 살인범의 회고록과 강수대 막내 형사 연지혜의 수사가 교차되며 전개된다. 살인범은 회고록을 통해 범행 이유를 비롯해 범행을 저지른 후 사이렌 소리만 나면 경찰이 잡아갈까 벌벌 떨다가 이내 마음을 놓은 22년의 세월을 고백한다. 연지혜는 2022년 재수사를 하며 당시 민소림이 가입한 도스토옙스키 독서 모임에 대한 수사가 미진했다는 점을 발견하고 이를 파고든다.
소설은 술술 읽히는 흥미진진한 추리극의 틀을 갖췄지만 사회적 고민도 상당하다. 살인범은 자신을 도스토옙스키의 소설 ‘죄와 벌’ 주인공이라고 생각한다. 전당포 노파를 살해한 라스콜리니코프처럼 현재 사법체계가 올바른지 질문을 던진다. 댓글로 여론을 조작하는 이야기를 담은 ‘댓글부대’(은행나무·2015년)나 청년들이 해외로 떠나는 세태를 반영한 ‘한국이 싫어서’(민음사·2015년)에서 보여준 사회에 대한 문제의식이 이번에도 여실히 드러난다. 작품 배경이 뤼미에르 빌딩인 것도 눈에 띈다. 소설은 인류의 ‘계몽주의’(뤼미에르)에 대한 철학적 고민까지 이어간다. 작가는 ‘르 메이에르 빌딩’에 산 적이 있고 연작소설집 ‘뤼미에르 피플’(한겨레출판사·2012년)을 냈다. 그는 “‘재수사’ 속 빌딩 이름은 우연”이라고 했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우리는 언제 추락할지 모르는 불안한 삶을 살고 있다고 봐요.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할지 몰라 공허해하고요. 2022년 한국 사회를 설명하는 단어는 ‘공허’와 ‘불안’이 아닐까요. 그런 우리에게 새로운 사상과 생각이 필요하다고 얘기하고 싶었습니다.”
그의 목소리엔 긴 숙제를 끝낸 듯 홀가분함이 묻어났다. 하지만 그는 벌써부터 또 다른 숙제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다.
“올해 10월과 내년에 에세이를 한 권씩 출간할 계획입니다. 공상과학(SF) 단편소설집 ‘육식성’(가제)과 장편소설 ‘할루엘라’(가제)도 준비하고 있어요. 보다 긴 호흡으로 글을 쓰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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