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는 소인이 찍힌 한 장의 우표 같은 느낌이었다. 아주 작고, 평면적이고, 어느 날 삶의 쓰임새를 다해 이제는 극도로 조용하게 우표 책에 꽂혀 계신 분.”
어디 할머니만 그럴까.
자식들은 다 그렇다. 부모님의 젊은 날도 가늠이 안 된다. 아니, 별로 상상해 보지 않는다. 그들은 이미 어른이었고, 나이 들어 있었다. 우릴 세상에 있게 해준 분들인데도, 그저 당연히 거기 있어 왔다 여긴다.
하지만 언젠가, 그리고 거의 ‘문득’ 깨닫는다. 특히 자식 낳아 기르다 보면. 소설 ‘나의 아름다운 정원’(2013년) ‘설이’(2019년) 등에서 고아하고 세밀한 문장을 보여준 작가도 마찬가지였나 보다. 딸을 키우며 겪은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 그는 할머니를 떠올린다.
작가의 할머니는 우리네 어르신들과 똑 닮았으되 또 다르다. 일제강점기부터 최근까지 험난한 세상사를 버텨내며 “내 속은 아무도 몰러” 하고 삭혀 내셨다. 말수가 적지만 몇 마디로 모든 상황을 보듬어 주셨고, 기다림과 믿음이 뭔지 표정만 갖고 일깨워 주셨다. 그렇다고 뭐 그리 거창하지도 않다. 할머니는 할머니일 뿐이기에 소중하고 위대하다.
등단 20년 만에 처음 썼다는 에세이는 솔직히 부럽기 짝이 없다. 우리 곁을 떠난 사랑하는 이에게 이런 글을 선물할 수 있다면, 당신께선 얼마나 기뻐하실는지. “죽으면 끝이여”라 생각하셨어도, 왠지 특유의 과하지 않은 미소를 싱긋 머금어 주시지 않을까.
게다가 이 책은 ‘자녀교육 지침서’로도 큰 울림을 지녔다. 할머니의 가르침을 어렵사리 딸에게 이어가려는 깨달음에 자연스레 고개가 끄덕여진다. 쑥스러웠을 시행착오를 털어놓는 게 간단치 않았을 텐데 공감을 나누고픈 작가의 마음 씀씀이도 고맙다. 처음 잡았을 때도 술술 잘 넘어가지만, 곁에 뒀다가 두고두고 곱씹어 보아도 좋겠다. ‘꿀짱아’(딸 별칭)가 지금은 어떤지 궁금하긴 한데, “장혀” 한마디 얻은 것으로도 읽을 가치는 차고 넘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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