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해 보자. 지금 나는 불치병 말기인 상태이며 매 순간이 육체적 정신적 고통의 연속이다. 의사는 내가 앞으로 몇 개월 이상 살아남을 가능성이 없다고 결론 내렸다. 지금 내가 자유로운 의사에 따라 고통 없이 삶을 마감하는 일이 허용되어선 안 되는가?
최소한 예전보다는 ‘허용해야 한다’는 답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쉽지 않다. 죽음을 허용할 만한 고통의 크기는 어떤 기준에 따라야 하나. 아파서 존엄한 삶이 불가능하다면 애초에 큰 장애와 질병을 안고 태어난 삶은 존엄하지 않은 것인가. 질병에 따른 ‘존엄사’를 인정한다면 병이 주는 경제적 부담 때문에 삶을 포기하는 사람이 생기지 않을까.
기자이자 다큐멘터리 제작자인 저자는 다큐멘터리의 시선으로 스스로 죽음을 결정하고자 하는 사람들과 그 조력자들을 만난다. 무엇이 바람직하고 무엇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결론을 섣불리 내리지 않는다.
점점 근육을 쓸 수 없게 되는 다발성경화증 환자, 자신의 정신이 무너져 내리는 것을 지켜봐야 하는 조기 치매 환자, 강박장애와 우울증을 겪는 정신질환 환자. 이들의 실제 모습과 존엄사를 추구하는 현실적 이유들을 차분히 기록하면서 ‘자발적이고 존엄한 죽음’이 허용되는 미국 오리건주, 네덜란드, 스위스 등에서 죽음으로 가는 길을 도와주는 전문가들을 만난다.
존엄사 지지자들은 “삶은 선물이다. 버리지 못한다면 선물이 아니라 부담이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네덜란드 안락사 감독위원회에서 일했던 신학 교수는 “병의 아픔으로 안락사를 생각하기 전에 완화치료의 향상에 함께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지적한다. 고통에 대한 해결책으로 죽음을 먼저 고려하는 분위기가 늘어나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이 논란들을 먼저 겪은 사회들의 경험은 어느 나라보다 노령 인구 비율이 가파르게 치솟는 한국 사회에서도 제때 진지하게 검토해야 할 숙제를 남긴다. 우리 국회에서는 올해 6월 15일 처음으로 존엄조력사법(연명의료법 개정안)이 발의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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