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와 강원 양구군, 박수근미술관, 강원일보가 공동 주최하는 이 상은 박수근 화백(1914∼1965)을 기리는 뜻에서 2016년 제정됐다.
차 작가는 돌이나 나무 같은 자연물을 이용해 설치와 회화 여러 분야에서 자연이 지니는 원초적인 힘을 실험해 왔다. 심사단은 “차 작가는 동양의 전통철학에 바탕을 두고 박수근의 치열한 예술정신을 잘 계승하고 있다”고 평했다.
시상식은 10월 25일 양구군 박수근미술관에서 열린다.
‘박수근미술상’ 차기율 작가
야생 그대로의 재료들 사용해 “땅에 대한 애정이 내 본연의 모습” ‘도시시굴…’ ‘순환의…’ 작업 승화 “자연이 만든 대범함 이길 수 없어… 자연과 협업한다는 생각으로 작업 이번 수상 계기로 다시 한번 도약”
“한참 나무를 깎고 있는 중에 전화가 걸려왔어요. 작업 중에 무심코 받았는데 ‘박수근미술상 수상자로 선정됐다’고 하더군요. 아, 드디어 나에게도 뭔가 ‘계기’가 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차기율 작가가 제일 먼저 떠올렸다는 계기란 뭘 뜻하는 걸까. 1일 인천 연수구 인천대에서 만난 그는 이를 “전력을 다해 작업할 동력”이라고 설명했다. 2013년부터 조형학부에서 제자를 가르치고 있는 그는 꽤 오랫동안 뭔가 창작에 집중하질 못하며 생긴 ‘공백’에 매우 고통스러웠다고 한다. 그런데 박수근미술상이 “다시 한번 삶을 도약시킬 힘을 주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1985년 인천대를 졸업한 차 작가는 이후 약 10년 동안 여러 그룹전 등에 참가하며 활동 반경을 넓혀 갔다. 하지만 1995년 두 번째 개인전을 마치고 난 뒤 무작정 유럽 여행을 떠났다. 그리고 귀국 뒤엔 1년 동안 작업을 멈췄다.
“그때까지 제 작가로서의 인생은 한마디로 ‘깍두기’였습니다. 마흔 살 즈음까지 뭘 해도 잘 안 됐어요. 제대로 자리를 잡지 못해 제 작품을 ‘설득하느라’ 몸부림쳤죠. 하지만 임기응변처럼 떠밀리듯 하는 전시는 관두고 싶었습니다. 여행에서 ‘나를 버려야겠다’는 결심을 하고선 무작정 산천을 떠돌았어요.”
그 결과로 내놓은, 1999년 서울 종로구 토탈미술관에서 개최한 개인전 ‘땅의 기억’은 차 작가의 예술 활동에 커다란 변곡점이 됐다. 이제는 그의 시그니처로 여겨지는 돌과 흙, 나무 등 야생 그대로의 재료들을 본격적으로 ‘화이트큐브’(전시장) 안으로 들여오기 시작했다.
“한마디로 땅에 천착하기 시작했어요. 땅에 대한 애정이 제 본연의 모습이란 걸 깨달은 겁니다. 전 경기 화성의 갯벌과 평야가 맞붙은 시골집에서 태어났어요. 어릴 때 학교가 끝나면 산에서 식물과 새를 보는 게 일상이었죠. 지금도 눈을 감으면 끝없는 갯벌과 아지랑이, 풀, 온갖 철새들이 떠오릅니다. 그게 제 놀이터이자 저만의 색깔이 된 거죠.”
이런 기억은 이후 그의 작업세계를 관통하는 자양분으로 자리 잡았다. 차 작가는 현재도 ‘도시 시굴―삶의 고고학’과 ‘순환의 여행―방주와 강목 사이’라는 프로젝트를 이어오고 있다. 도시 시굴은 집 뒷마당 같은 평범한 공간의 땅을 발굴해 삶의 흔적이 담긴 옹기 조각 등을 수집해 전시한다. 순환의 여행은 자연물과 문명을 결합시켜 보는 작업이다. 차 작가는 “자연이 만든 대범함은 이길 수 없다”며 “무에서 유를 만드는 게 아니라, 자연의 산물과 협업한다는 생각으로 작업한다”고 설명했다.
설치미술을 주로 하다 보니 전시가 끝나면 작품을 해체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하지만 차 작가는 크게 개의치 않는다. 그는 “예술은 시각적 산물에 그치지 않고 정신이 바탕이 된 영적 산물”이라며 “의미 없이 소멸되는 게 아니라 예술에 대한 신념과 삶에 대한 열렬한 긍정이 남기 때문”이라고 했다.
차 작가가 이런 확신을 가지게 된 건 어머니의 힘이 컸다. 2014년 세상을 떠나시며 어머니는 단 한마디, “정직하게 살아라”라고 말씀하셨다. 그는 이 말을 되뇌며 강화도 작업실 앞마당 매화나무 아래 어머니를 모셨다.
“지난해 그 매화나무가 고사했어요. 안타깝지만, 이 나무를 활용해 10월 수원국제예술제 ‘온새미로 프로젝트’에서 작품으로 발표할 예정입니다. 일평생 아들의 삶이 녹록지 않은 것을 걱정하면서도 응원했던 어머니에게 이렇게라도 뭔가 갚고 싶은 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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