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硏, 中-日도 못한 복원 성공
연잎을 닮은 짙은 녹색 전통안료
“고문헌에 제조법 단 두줄만 나와, 4년 연구 끝 원료배합 비율 찾아”
햇빛에 변색되지 않는 방법도 얻어… 옛 단청의 원래 색상 살릴 길 열려
경북 경주 불국사 대웅전, 충남 공주 마곡사 대웅보전 등 고건물의 단청을 칠하는 데 쓰였던 전통 안료 ‘동록(銅綠·동으로 만든 녹색안료)’은 연잎처럼 짙은 녹색을 띠어 하엽(荷葉·연꽃의 잎)이라 불렸다. 하지만 19세기 말 근대로 접어들면서 잃어버린 색이 되고 말았다. 화학 안료 시장이 커지면서 비싸고 오랜 공정 과정을 거치는 전통 안료는 전수의 맥이 끊겨버렸기 때문이다. 동록은 한중일 전통 안료 시장을 지배하고 있는 일본과 중국에서조차 복원하지 못한 ‘미지의 색’으로 남았다.
영영 잃어버린 줄 알았던 동록을 지난달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원이 복원해냈다. 2019년부터 한중일 고문헌을 토대로 제조법을 찾아내 전통 안료 강국인 일본과 중국보다 먼저 동록의 수수께끼를 풀어낸 것. 7일 대전 국립문화재연구원 복원기술연구실에서 만난 이선명 학예연구사(40)는 “한중일 고문헌에 단 두 줄로 설명된 동록의 제조법을 알아내기까지 4년의 시간이 걸렸다”고 말하며 웃었다.
현재까지 전해지는 동록 제조법은 659년 당나라 의학서인 ‘신수본초(新修本草)’에 나오는 “동 분말과 광명염(光明鹽·염화나트륨), 요사(B砂·염화암모늄) 등을 이용해 제조한다”는 기록이 대표적이다. 옛 선조들은 녹슬어 부식된 동 그릇 표면이 녹색을 띤다는 데서 착안해 동이 부식됐을 때 나오는 물질을 이용해 녹색 안료를 만든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문헌 속에는 재료에 대한 힌트만 나와 있을 뿐 정확한 성분 비율이 전해지지 않아 제조법은 미궁 속에 있었다.
복원기술연구실 소속 강영석 연구원(44)은 “수수께끼를 풀듯 원료인 구리와 부식제인 염화나트륨과 염화암모늄의 비율을 조금씩 조정하며 수백 번이 넘는 실험 과정을 거쳤다”며 “2년간의 실험 끝에 동 분말과 부식제의 비율이 1 대 2일 때 가장 효율적이라는 사실을 밝혀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실험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이렇게 만들어진 동록을 갈아 쓰기만 하면 되는 줄 알았는데, 나무 표면에 채색해 보니 고르게 발리지 않았다. 게다가 빛에 노출될 경우 3년 안에 녹색이 어둡게 변색될 거라는 예측 결과도 나왔다.
“‘아, 이제 됐다’고 끝내려는데 다시 난관에 봉착한 거예요. 알고 보니 동록 속에 남아 있는 염 성분 때문에 변색된 거였죠. 동록에서 염 성분을 완전히 제거하기까지 6개월이 더 걸렸습니다. 그때 깨달았어요. 전통을 복원하는 일에는 끝이 없다는 걸 말이죠.”(강 연구원)
어렵사리 얻어낸 동록의 빛깔은 화학 안료와는 확연히 달랐다. 이 학예연구사는 “천연안료로 색칠한 표면은 알갱이가 살아 있는 듯 입체적으로 느껴진 반면 화학 안료가 칠해진 표면은 평면적이었다. 이게 바로 전통 안료를 복원하는 이유”라며 웃었다.
옛 단청을 가장 전통적인 방식으로 복원할 길도 열렸다. 국립문화재연구원이 2017년부터 2020년까지 전통고건축문화재 44곳에서 녹색 안료로 칠해진 668곳의 성분 분석을 실시한 결과 226곳에 동록이 쓰인 것으로 확인됐다. 갈아 만든 천연 녹색 안료 ‘석록(石綠)’이나 ‘뇌록(磊綠)’보다도 동록의 사용 비중이 더 높은 셈이었다. 국립문화재연구원은 앞으로 단청을 칠하는 장인에게 동록이 가진 특성을 전수해 전통 안료에 대한 이해도를 높일 계획이다.
“우리는 시간을 거스르는 자들입니다. 하나의 전통 안료가 복원되고 세상에 쓰이기까지 10년, 어쩌면 그 이상의 시간이 걸릴지 몰라요. 구닥다리 같아 보여도 우리 문화재를 보존하는 일에는 원칙을 지켜야죠.”(이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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