빽빽한 아파트 속 전원주택 마을?…집보다 더 집 같은 ‘학교’입니다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9월 25일 11시 4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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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건축상 받은 ‘신길중’ 르포
이현우 건축가 “학생들이 학교의 진정한 주인 되길”

4000세대가 넘는 29층 높이 고층 아파트 단지로 둘러싸인 서울 영등포구 신길재정비촉진지구. 빽빽한 아파트 숲 사이 지하 1층, 지상 4층 규모 키 작고 자그마한 집들이 옹기종기 모인 작은 마을이 지어져 있다. 멀리서 보면 흡사 도심 속 전원주택단지 같아 보이는 이 건물은 바로 ‘신길중학교’다.

서울 영등포구 신길동 고층 아파트 대단지에 둘러싸인 신길중학교는 마치 전원주택들이 옹기종기 모인 작은 마을과 같다. 서울건축문화제 제공

지난해 3월 개교한 신길중은 14일 열린 ‘제40회 서울특별시 건축상’ 시상식에서 완공 부문 대상을 수상했다. 이 학교를 설계한 이집건축사사무소 대표 이현우 건축가(54)는 2018년 서울시교육청이 주최한 설계 공모전에 참가하기 전 아파트 재건축이 한창인 학교 부지를 찾았다가 “집보다 더 집 같은 학교”를 상상했다고 한다.

“거대한 아파트 단지 안에서 덩어리의 일부로 살아갈 아이들을 떠올렸어요. 위압적인 건물들 속에서 아이들이 상상력을 키우고 자기 삶의 주인이 될 수 있을까요. 학교는 아파트와 정반대로 지어야겠다고 결심했죠. 아이들에게 집보다 더 집 같은 학교를 지어준다면 아이들이 제 집처럼 학교를 가꿔나갈 테니까요.”

24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신길중학교에서 이집건축사사무소 이현우 건축가가 설계 의도를 설명하고 있다. 이 건축가는 "학교 안에 크고 작은 중정 19곳을 만들어 모든 아이들이 쉬는 시간에 햇볕을 쬘 수 있다"고 말했다. 김동주 기자 zoo@donga.com

24일 이 건축가와 함께 둘러본 학교는 여러 채의 집을 잘게 나눈 작은 마을과 같았다. 4층짜리 통 건물이 아니라 22채의 조그마한 집들이 앞마당을 서로 맞댄 채 이어져 있다. 3개 동으로 기다랗게 연결된 동시에 각 동의 층수를 달리 해 앞 건물 옥상이 뒤편 마당이 되어주는 식이다.

연면적이 9858㎡인 학교에 마련된 중정이 무려 19곳. 중정과 교실로 통하는 문이 통유리 창으로 연결돼 있어 아이들이 교실 문을 나서면 어디서든 볕을 쬘 수 있다. 이 건축가는 “아이들이 운동장까지 걸어 나가 햇볕을 쬐기에는 10분 남짓한 쉬는 시간은 너무 짧다. 교실 앞에 작은 정원이 있다면 그 짧은 시간에도 아이들이 햇볕을 쬘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 덕분에 학교의 사각지대이자 골칫덩이였던 옥상이 아이들의 놀이터로 탈바꿈했다. 특히 각 층마다 옥상 중정을 덕분에 특정 무리가 공간을 독점하지 않고, 모든 아이들이 쉼터를 두루 나눠 쓸 수 있게 됐다.

이 건축가는 “일부러 중정마다 생김새를 다 다르게 설계했다. 1층 도서관 앞에는 단풍나무를 심어 책을 좋아하는 아이들이 야외에서 책을 읽고, 벽돌 바닥으로 만든 테라스에서는 아이들이 둘러앉아 수다를 떨 수 있다”며 “크기는 작을지라도 중정을 19곳으로 쪼개 다양한 아이들이 쉼터를 누리길 바랐다”고 했다.

3개의 기다란 건물이 중정을 맞대고 서로 이어져 있는 신길중의 모습. 옥상 정원에 각 건물로 통하는 길을 내 쪼개져 있지만 서로 연결돼 있다.  서울건축문화제 제공
3개의 기다란 건물이 중정을 맞대고 서로 이어져 있는 신길중의 모습. 옥상 정원에 각 건물로 통하는 길을 내 쪼개져 있지만 서로 연결돼 있다. 서울건축문화제 제공

중정을 사이에 두고 앞 동과 뒷 동이 쪼개진 듯 보이지만 모든 길은 서로 통한다. 교실과 중정이 서로 연결되고, 중정과 건너편 건물이 유리문을 통해 이어지는 식이다. 이 건축가는 “다른 목적지로 이동할 때 한 방향으로만 길을 내지 않고 여러 갈래의 길을 내 아이들이 스스로 선택할 수 있게 설계했다”고 설명했다. 바쁘면 건물 내 계단과 복도를 통해 건너편으로, 시간이 넉넉하다면 푸른 잔디와 나무가 심어진 중정을 가로질러 이동할 수 있다.

“아이들이 삶의 목적지로 나아갈 때 하나의 길이 아니라 여러 갈래의 길이 있다는 걸 몸소 깨달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고 싶었어요.”

뾰족한 박공지붕과 평평한 지붕 등 다양한 건물 외형에도 건축가의 철학이 담겼다. 이 건축가는 “교실의 천장이 제각기 다르듯 아이들이 살아가면서 다름이라는 가치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기를 바랐다”고 말했다.

24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신길중 옥상 정원에서 이집건축사사무소 이현우 건축가가 설계 의도를 설명하고 있다. 김동주 기자 zoo@donga.com

무엇보다 이 건축가는 “아이들이 제집처럼 학교를 가꾸고 바꿔나가며 학교의 진정한 주인이 되길 바랐다”고 강조했다. 이날 교실 곳곳에는 아이들이 직접 가꾼 화분이 보였다. 잔디밭이 심어진 중정에는 해바라기 꽃들이 줄을 지어 피었다. 중정 난간에는 아이들이 손수 만들어 붙인 바람개비가 돌아가고 있었다. 아이들이 손수 가꿔놓은 정원을 바라보던 이 건축가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저는 마음껏 상상할 수 있는 공간을 준 것뿐이에요. 요즘 학생들이 이 잔디밭에서 씨름을 한대요. 저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활용법인데(웃음). 역시 아이들은 제가 상상한 것보다 더 대단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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