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교포 시인 최돈미 “나는 추방된 언어를 구사하는 사람”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9월 26일 11시 37분


시집 ‘DMZ 콜로니’, 2020년 美 최고 권위의 문학상 전미도서상 수상


1972년 당시 10세였던 재미교포 시인 최돈미(60)는 한국을 떠났다. 동아일보 사진기자 출신으로 미국 ABC, CBS 방송 아시아 특파원으로 일하며 4·19혁명, 베트남전쟁을 보도했던 아버지가 신변의 위협을 느꼈기 때문이다. 최돈미는 특파원으로 일하는 아버지를 따라 홍콩, 독일에 살며 자신이 왜 고국에 돌아갈 수 없는지 고민했다. 미국 캘리포니아예술대(칼아츠·California Institute of the Arts)에 진학한 뒤 다큐멘터리 영상을 만들던 그에게 어느 날 교수가 말했다. “네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담긴 시를 써보면 어떻겠냐”고. 그때 그는 그가 뿌리인 한국에 대해 쓸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23일 서울 마포구의 한 호텔에서 만난 그는 해외 작가로서 한국에서 열리는 서울국제작가축제에 참가했다는 사실에 흠뻑 감동해 있었다. 그는 어눌한 한국어와 유창한 영어를 번갈아 쓰며 자신의 기분을 털어놨다.

“제 시집에 대해, 번역 작업에 대해 어떤 질문이 나올까 걱정되고 두려워요. 전 한국을 떠난 뒤 아버지가 가지고 다니셨던 국어사전을 탐독하고, 1998년엔 연세대 한국어학당에서 공부하기도 했지만 아직 한국어가 부족합니다. 제가 쓰는 언어는 한국어도, 영어도 아닌 그 사이의 어떤 것이죠. 저는 모국어를 갖지 못한 사람, 추방된 언어를 구사하는 사람이에요.”

그는 비무장지대(DMZ)를 소재로 한 시집 ‘DMZ 콜로니’로 2020년 미국 최고 권위의 문학상인 전미도서상을 수상하며 화제에 올랐다. 그는 ‘DMZ 콜로니’에서 남과 북을 가르는 38선이 국가의 허리를 끊었다고 외치고, DMZ와 위도가 비슷한 미국 미주리주 세인트루이스에서 흰기러기가 날아가는 장면을 바라보며 슬픔을 털어놓는다. 4·19 혁명과 5·16 군사정변 사진, 비전향 장기수가 자신이 고문당했다는 사실을 털어놓는 노트를 다양하게 활용하며 한국사를 냉철하게 들여다본다.

“아버지는 항상 한국에 대해 이야기하셨죠. 왜 내가 이렇게 여러 나라를 떠돌 수밖에 없었는지, 한국에선 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고 싶어서 시를 썼습니다. 그 과정에서 독재의 피해를 입은 분들을 직접 찾아가 만나 이야기를 듣기도 했죠. DMZ 콜로니는 취재와 고민의 산물입니다.”

그는 시인 김혜순 시집 ‘전 세계의 쓰레기여, 단결하라!’(2011)와 ‘죽음의 자서전’(2016)을 번역해 미국문학번역가협회 루시엔 스트릭상을 2차례 받았다. ‘죽음의 자서전’으로 캐나다 그리핀 시문학상을 수상했다. 20년 넘게 시를 번역해온 영혼의 단짝인 김혜순에 대해 묻자 그는 활짝 웃으며 답했다.

“1998년 처음 김혜순 선생님의 시를 읽고 홀렸어요. 창의적이고 상상력인 넘치는 이런 시는 다른 어느 나라에도 없거든요. 특히 한국 여성의 고통을 이야기한 선생님의 작품을 읽으며 한국에 더 관심을 기울이게 됐죠. 시처럼 새롭게 언어를 만드는 작업인 번역을 하면서 제 시가 더 깊어진 것 같습니다.”

서울국제작가축제가 끝난 뒤 무엇을 할 것이냐는 질문에 그는 차분히 답했다.

“축제에 참가하기 전 며칠 동안 광주를 다녀왔어요. 5·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특파원으로 광주를 취재하던 아버지가 시민군 대변인으로 옛 전남도청을 지키다 계엄군 총탄에 맞아 숨진 윤상원 열사에 대해 해준 이야기가 있어서 이를 더 알아보려고요. 아마 올해 말 5·18을 다룬 시집을 출간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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