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에 사는 저널리스트인 저자는 12살 무렵 절친한 친구를 떠나보내는 아픔을 겪었다. 친구 해리엇은 불어난 하천에 빠진 반려견을 구하려다 목숨을 잃었다. 장례식에서 저자는 처음엔 ‘저 관 속에 든 게 뭘까’ 궁금해 하다가 문득 뭔가를 깨달았다. “시신은 그리 간단히 사라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실제로 한 사람이 숨지면 가족이든 누구든 어떻게든 보살피고 처리해야 한다. “죽음은 ‘순간’이 아닌 ‘과정’이라는 것”을 배운 저자는 고통스런 사건을 계기로 ‘죽음과 함께 하는 사람들’에게 줄곧 호기심을 지녀왔다고 한다. 영안실과 해부실, 화장장, 인체냉동보존연구소 등 다양한 관련 현장을 취재한 것도 그런 연유였다.
책에는 모두 12명의 ‘죽은 자들을 마주하는 이들’이 등장한다. 장의사나 사망현장 특수청소원처럼 낯설지 않은 직업부터 많은 이들이 목숨을 잃는 참사 뒤 활동하는 희생자 신원확인 담당자나 사람이 숨지면 얼굴을 석고 등으로 본뜬 ‘데스마스크’ 조각가 등을 만나 속내를 들어본다.
유독 가슴에 남는 이는 ‘사산 전문 조산사’다. 이미 숨을 거뒀거나 출산해도 생존 확률이 거의 없는 신생아를 받는 일을 담당한다. 너무나 잔인한 일이지만, 조산사인 클레어는 생각이 달랐다. “아기를 살리진 못하지만 가족은 보살필 수 있겠다”는 마음으로 이 직업을 택했다고 한다.
클레어의 중요 업무 가운데 하나는 가족들이 나중에 후회하지 않도록 애도하는 방법을 안내하는 것. 아이의 생김새를 설명해주고, 가능하면 담요로 감싸 안아보도록 제안한다. 아기의 사진과 손ㆍ발 도장도 상자에 넣어준다. 가족에게도 배려가 되지만 “실제 아이가 세상에 존재했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들을 ‘탄생과 죽음을 한꺼번에 다룬다’고 표현했다.
죽음을 마주하는 이들은 공통점이 있다. 모두 사망자들에게 최선을 다한다.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정성을 쏟는다. 그게 “죽은 자는 물론 산 자에 대한 예의”라 믿기 때문이다. 우리도 안다. 삶은 언제나 죽음과 맞닿아있다. 평소엔 짐짓 모른 척 하고 지낼 뿐. 저자가 소개한 이런 이들이 있기에 우리는 다시 삶의 정상 궤도로 돌아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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