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릿한 베이스 사운드에 민요와 록 발성을 오가는 중저음 목소리가 무대를 가득 채운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민요소리꾼 추다혜(37). 가죽재킷 차림에 독특한 장신구를 머리에 올린 그가 무가(巫歌ㆍ굿에서 무당이 부르는 노래)를 재해석한 노래를 부르면 무대와 공연장은 단숨에 한바탕 제의가 벌어지는 굿판으로 변한다.
공연명은 ‘광-경계의 시선’. 지난달 29일 서울 종로구 두산아트센터에서 개막한 이 공연은 스스로를 ‘가짜 무당 마틸다’라 칭하는 추다혜의 신작이다. 신과 인간의 경계에 선 무당의 삶을 이야기로 풀어냄과 동시에 무가와 민요를 결합ㆍ재해석한 노래 13곡을 부른다.
공연은 콘서트와 연극, 뮤지컬을 한데 뒤섞은 것처럼 장르는 특정하기 힘들다. 13곡의 노래 사이사이, 그는 정해진 운명에 따라 무당이 된 한 남자아이의 이야기와 자신의 경험담을 풀어낸다. 그는 “연극, 뮤지컬, 콘서트 같은 방식의 분류가 아닌 조금 다른 퍼포먼스 극을 해보고 싶었다”며 “이야기와 노래를 오가는 재담극에 퍼포먼스를 더한 공연”이라고 했다.
추다혜가 본 무당은 한없이 외로운 존재였다. 사람들은 힘든 일이 있을 때 무당을 찾지만 평소엔 무당을 무서워하거나 혐오한다. 신과 인간의 경계에 서있는 무당이 외로울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런 무당을 위로하기 위해 지었다는 ‘아는 사람’에는 추다혜가 무당에게 보내는 위로가 깔려있다. 공연에서 ‘아는 사람’을 부르기 전 그는 “항상 남을 위해 기도하는 사람(무당) 누가 빌어줄까 싶어서 한번쯤은 많은 사람 앞에서 꺼내보고 싶었다”고 말한다.
함경도, 제주도, 황해도 등에서 불리는 무가에 민요, 펑크, 재즈, 모던록, 명상음악까지 다양한 장르를 아우른 음악이 이어진다. 독특하지만 대중적이기 힘든 무가에 천착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는 “굿과 무가가 누군가를 달래주고 풀어주는 것이라면 영성, 위로의 메시지가 담겨있을 거라 생각했다”고 했다.
서도민요(평안도ㆍ황해도 지방 민요)를 전공한 추다혜는 민요를 기반으로 여러 음악 작업을 해온 국악창작자다. 밴드 이날치의 장영규, 경기민요 소리꾼 이희문 등과 민요 록밴드 ‘씽씽’으로 활동했다. 2016년, 9살에 신 내림을 받은 이찬엽의 무대에서 무가를 처음 접한 그는 “무당이 보여주는 퍼포먼스야말로 종합예술”이라 생각했다고 했다. 이후 2019년엔 이시문(기타), 김재호(베이스), 김다빈(드럼)과 함께 자신의 이름을 내건 ‘추다혜차지스’를 결성하고 무가와 밴드 사운드를 결합한 음악으로 채운 앨범 ‘오늘밤 당산나무 아래서’(2020년)를 발표했다. “전례를 찾아볼 수 없는 놀라운 음악의 탄생”이란 호평과 함께 지난해 한국대중음악상 최우수 알앤비&소울 노래 부문을 수상했고 2017년엔 BTS보다 먼저 미국 공영라디오 NPR의 ‘타이니 데스크 콘서트’에 출연해 화제가 됐다.
구성, 연출, 음악감독, 출연까지 ‘가짜무당’ 추다혜가 책임진 이 공연은 75분간 이어진다. 공연이 끝날 무렵 그는 “한바탕 굿판을 보았으니 신병에 걸리지 않으려면 신나게 놀아야 한다”며 관객들의 박수와 함성을 이끌어낸다. “전 무대에 서지 않으면 (신병에 걸린 듯) 실제로도 몸이 아프거든요.(웃음) 신이 있다면 무대 위에서 무언가를 풀어내는 사명, 그에 걸맞은 재능, 사람들 앞에 서는 즐거움을 내게 준 것 같아요.” 12일까지, 전석 3만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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