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내 항일외교 중심지
2007년부터 박물관 건립 추진
몇 차례 매입 지연되는 사이
러 연방문화재 지정… 개조 못해
러시아 옛 수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페스텔랴 거리 5번지에 서 있는 5층짜리 아파트는 경술국치에 항거해 1911년 자결한 독립운동가 이범진 열사(사진)의 혼이 서린 곳이다. 이 열사가 1901∼1905년 위기의 대한제국을 지키려 필사의 외교전을 펼친 주러 대한제국공사관이 이 아파트 4층에 있었다. 1905년 을사늑약으로 대한제국이 외교권을 빼앗기면서 공사관도 사라졌지만 이 열사는 고종 황제의 밀명을 받아 최후까지 항일 외교를 펼쳤다.
4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등에 따르면 정부가 2007년부터 추진했던 주러 대한제국공사관 매입 사업이 15년 만에 최종 좌초된 것으로 확인됐다. 주상트페테르부르크 총영사관은 최근 국회에 “지난해 12월 공사관 건물 매입 관련 법률검토 결과 건물 내 박물관 건립이 불가능하다는 결과를 접수했다”고 보고했다. 2021년 외통위 국정감사에서 건물 매입을 촉구했던 것에 대한 답변으로, 공사관 매입 사업이 끝내 불발됐다는 의미다.
이 사업은 주상트페테르부르크 총영사관이 2007년 국가보훈처 지원을 받아 건물 1층을 매입해 이 열사 기념박물관을 만들자는 취지로 추진됐다. 당시엔 공사관이 있었던 정확한 층·호수를 알지 못한 데다 러시아 건축법상 주거공간에 박물관을 만들려면 출입구를 별도로 만들어야 했기에 접근성이 좋은 1층을 후보지로 삼았다. 당시 예산 8억5000만 원을 지원받기로 했지만 2008년 금융위기가 터져 환율과 부동산 가격이 폭등하고 예상치 못한 법률자문 비용이 2억여 원 더 발생하는 등 필요예산이 2배로 늘어나 결국 보류됐다.
총영사관은 2015년 광복 70주년 겸 한-러 수교 25주년을 맞아 다시 사업을 추진했지만 “당시 공사관이 있던 정확한 호수가 파악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불발됐다. 이에 2017년 고려인 학자들과 함께 러시아 고문서 등을 뒤져 공사관이 아파트 4층 7, 8, 24, 54호에 위치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하지만 현지법에 맞춰 아파트 4층에 별도의 출입구를 뚫는 것은 불가능했기에 다시 1층 매입을 추진했지만 보훈처가 채택하지 않았다.
그러나 지난해 외통위가 현지 국감에서 “공사관 매입에 최선을 다하라”고 요청하자 총영사관은 법률검토를 받았다. 그 결과 이 아파트가 2011년부터 개조가 불가능한 연방문화재로 지정됐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원래 공사관이 있던 4층 대신 1층을 매입해 창문을 출입문으로 개조하고 박물관을 만들려던 계획마저 불가능해진 것. 변철환 주상트페테르부르크 총영사는 동아일보에 “공사관 매입 대신 기존 총영사관 건물을 확장 임차한 공간에 이 열사 기념박물관을 조성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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