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로부터 우리말을 지켜낸 외솔 최현배 선생(1894~1970)은 생전 그의 손자인 최홍식 세종대왕기념사업회장(69)에게 이런 친필을 남겼다. ‘조선어학회’ 회원으로 일제강점기 우리말을 연구하고 한글날을 제정한 외솔은 “훈민정음은 발음기관의 모양을 본 딴 과학적인 문자”라는 사실을 밝혀내기 위해 일생을 바쳤다. 그는 지금으로부터 80여 년 전 훈민정음의 창제 원리를 음성의학적인 방식으로 풀어내려 시도했던 선구자였다.
외솔의 손자인 최홍식 세종대왕기념사업회장(69)은 “할아버지가 남긴 과제를 푸는 것이 일생 동안 제가 남겨야 할 변치 않을 한 가지”라고 말했다. 이비인후과 의사이기도 한 그는 4일 오후 진행한 인터뷰에서 “할아버지는 발음기관을 본 딴 한글의 과학성이야말로 우리말이 가진 힘이자 강력한 뿌리라고 말씀하셨다”며 “외솔의 후손인 나는 그보다 더 정확하고 과학적인 방식으로 할아버지가 지켜낸 우리말의 뿌리를 잇고 싶다”고 했다.
이비인후과 의사인 그가 할아버지를 쫓아 훈민정음을 연구하기 시작한 건 2012년 무렵이다. 외솔회 이사장을 맡아 조부가 1941년 처음 출간한 ‘한글갈’을 처음 접하면서다. 외솔은 이 책에서 중성자(·, ㅡ, ㅣ)는 하늘과 땅, 사람이 서 있는 모양을 본떠 만든 ‘천지인(天地人)’ 사상을 본 딴 것이라고 해석하는 기존 한글학계 견해와 달리 중성자 역시 발음기관을 본 딴 상형문자일지 모른다는 새로운 의문을 제기했다.
“이비인후과 의사로서 발음기관의 구조를 연구해온 것이 큰 도움이 됐어요. 우리 글자를 발음할 때 발음기관의 모양을 컴퓨터 단층 촬영(CT) 등 음성의학적인 방식으로 분석한다면 할아버지가 품었던 의문을 밝혀낼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있었습니다.”
최 회장이 최근 대한후두음성언어의학회지에 발표한 ‘중성자 제자해에 대한 음성언어의학적 고찰’이라는 논문에는 2015년부터 6년간 이어온 연구의 결과가 담겼다. 이 논문에서 최 회장은 중성자(·, ㅡ, ㅣ)를 발음할 때 구강과 인후두강의 모습을 CT로 촬영해 “중성자 역시 발음기관의 모양을 본 딴 상형문자”라고 주장했다. 1941년 외솔이 저서 ‘한글갈’에 품었던 의문을 그의 손자가 밝혀낸 것. 그는 “내년에는 자기공명영상(MRI) 기법으로 발음기관을 연구해 지금보다 더 정확한 분석 결과를 내놓을 것”이라고 말했다.
“더 나아가 카이스트(KAIST)와 협업해 우리 글자를 말할 때 발음기관의 모양을 3D로 입체화하는 연구를 진행할 계획이에요. 음성의학, 컴퓨터공학을 융합한 저만의 방식으로 한글의 우수성을 밝혀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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