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노벨문학상]
페미니즘 화두 떠오르며 함께 각광
출판계 오랜만에 ‘노벨상 특수’ 기대
“지긋지긋하다. 그들에게, 모두에게, 문화, 내가 배웠던 모든 것에 구역질이 난다.”(소설 ‘빈 옷장’에서)
아니 에르노는 최근 국내 출판계에서 가장 뜨거운 작가 가운데 한 명이다. 1974년 등단한 뒤 지금도 왕성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지만 국내에서는 몇 년 새 ‘에르노 붐’이 일며 많은 작품이 쏟아졌다.
출판계에 따르면 에르노 소설은 올해에만 ‘그들의 말 혹은 침묵’ ‘카사노바 호텔’ 등 8권이 출간됐다. 2019년부터 계산하면 데뷔작 ‘빈 옷장’(2020년)을 포함해 15권에 이른다. 책을 내놓은 출판사도 6곳이 넘는다.
해마다 노벨 문학상 유력 후보로 꼽혀온 작가지만 다소 이례적인 상황. 전문가들은 국내에서 페미니즘이 사회적 화두로 떠오르며 에르노도 함께 각광받은 것으로 본다. 에르노의 문장은 여성을 둘러싼 통념에 얽매이지 않고 “칼로 도려내고 파헤치고 해부하는 듯한” 자전적 소설로 유명해 최근 독자들이 선호하는 경향에 잘 부합한다는 설명이다.
특히 국내 여성 작가나 문학평론가들이 에르노 작품을 단골 추천 목록으로 올려온 것도 인기에 한몫했다. 유상훈 민음사 편집자는 “여성주의에 바탕을 둔 실천적 글쓰기가 에르노 소설의 큰 장점”이라며 “많은 출판사가 출간 경쟁을 벌일 정도로 관심이 높다”고 말했다.
최근 화제를 모은 작품은 2000년에 발표한 ‘사건’이었다. 프랑스가 낙태를 법으로 금지했던 1960년대에 작가가 스스로 목숨을 걸고 시도했던 임신중절 경험을 풀어내 발간 당시에도 큰 논란을 일으킨 문제작이다. 이 작품은 지난해 이탈리아 베니스영화제에서 최고상인 황금사자상을 받은 영화 ‘레벤느망’의 원작으로 더 유명해졌다. 당시 심사위원장이었던 봉준호 감독은 “모두가 이 영화를 정말 사랑한다”며 극찬했다.
출판계에서는 오랜만에 ‘노벨 문학상 특수’를 맞을 것이란 기대도 크다. 교보문고는 발표 직후 온라인서점의 에르노 작품에 ‘2022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라는 문구를 달고 홍보에 나섰다. 문학동네 관계자는 “지난해 수상자인 소설가 압둘라자크 구르나, 2020년 수상자인 시인 루이즈 글릭은 국내에 출간된 작품이 없었다”며 “에르노는 20, 30대 여성을 중심으로 국내에도 팬층이 두꺼워 출판시장에 활력을 불어넣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했다.
조재룡 고려대 불어불문학과 교수는 “에르노는 프랑스 문단에서 현존하는 최고이자 최후의 소설가란 평을 받는 인물”이라며 “절대적인 리얼리즘에 바탕을 둔 소설을 통해 간결하면서도 진실 가득한 문장을 쓰는 ‘글쓰기의 실천적 측면’을 이룬 대가”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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