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은 지구가 종말을 맞이할 것이라는 예언으로 떠들썩했다. 그해 여름, 동반자살을 결심한 나와 지민은 자살 전 출판사 편집자인 나의 외삼촌을 찾아간다. ‘재와 먼지’라는 출간 금지된 책을 찾기 위해서였다. ‘재와 먼지’는 지민의 엄마가 자살하기 전 쓴 책으로, 외삼촌이 기억하기로는 시간여행을 다룬 내용이었다.
책 내용은 이랬다. 한 연인이 그들의 사랑이 끝나감을 깨닫고 동반자살을 택한다. 그런데 그 순간 두 번째 삶이 시작된다. 달라진 건 시간이 역순으로 흐른다는 것. 시간을 거스르다 연인은 그들이 처음 만났던 그 순간을 찾는다. ‘이토록 설레며 우리는 만났던가.’ 둘은 이 사실을 깨닫자마자 오랜 잠에서 깬 듯 벌떡 일어나 서로를 바라본다. 그리고 시간은 다시 원래대로 흐르고 세 번째 삶이 시작된다.
소설집의 표제작인 ‘이토록 평범한 미래’는 “과거가 아니라 미래를 기억해야 한다”는 외삼촌의 말로 끝난다. 박혜진 문학평론가의 말처럼 “미래는 가장 평범한 모습으로 우리의 현재에 이미 존재하고 있다”는 뜻이다. 이는 소설집을 관통하는 메시지다. ‘사월의 미, 칠월의 솔’(2013년) 이후 9년 만에 단편소설집을 내놓은 저자는 표제작을 포함해 여덟 편의 소설을 통하여 현재를 다시 생각해 보게 한다.
지금의 선택이 미래를 바꾼다는 말을 하는 소설은 아니다. 소설 속에서 일어난 일은 그 자체로 변하지 않는다. 주인공들은 일어나버린 사건을 중심으로 어떠한 ‘이야기’를 말한다. 이야기는 주인공들이 현재를 새롭게 바라보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난주의 바다 앞에서’ 속 소설가 정현은 대학 동창인 유미를 30년 만에 만나 유미가 겪은 일을 듣게 된다. 유미는 몇 년 전 아이를 잃고 큰 실의에 빠졌다. 이때 유미를 일으켜 세운 건 언젠가 정현이 들려준 체육 용어에 관한 이야기였다.
같은 결말이라도 각자가 그 결말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취사선택해 이야기를 만든다면, 그 결말은 정말 같은 결말일까. 책은 이러한 질문을 던진다. “한동안 괴로운 마음에서 좀체 벗어나지 못했다”고 고백한 저자가 어찌할 수 없는 고통 앞에서 작가가 할 수 있는 일에 대해 고민한 결과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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