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선설이나 성악설이나 모두 본질은 옳은 것이다. 두가지 설이 꼭 모순되는 것도 아니다. 인간은 선의 자질을 갖고 있지만, 방치해두면 욕망에 넘어가고 만다. 느슨해질 가능성을 갖고 있는 존재다. 즉 약하다. 물론 강한 사람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인간은 모두 약한 면을 갖고 있다. 그러면서도 선한 일을 하려는 마음이 있다. 그것이 대다수 인간의 모습이 아닐까. 따라서 ‘인간은 선하지만 연약하다’는 명제가 성립되는 것이다. 나의 인간관은 ‘성약(性弱)설’이다. 조직을 경영하는 사람에게 가장 적절한 인간관이 바로 성약설이라고 생각한다…. 성악설이나 성선설 어느 한쪽만이 아닌, 두가지 측면을 모두 가진 것이 인간의 본래 모습일 것이다. 그것이 바로 성약설이다. (중략) 강한 사람, 나쁜 사람은 동화되기 힘들다. 선한 사람뿐이라면 엔트로피는 증가하지 않는다. 좋은 방향의 도미노 연쇄를 촉발하는 것은 인간의 선한 부분이지만, 마지막에 대세에 편승하려는 것은 인간의 연약한 부분일 것이다.“ - 경영학자 이타미 히로유키(伊丹敬之,1945년~) 교수의 책 ‘경영자가 된다는 것’ (2010년)에서
▽맹자의 성선설, 순자의 성악설 이래 동양에선 두 주장이 맞서왔습니다. 기독교에선 인간을 원죄가 있는 죄인으로 봅니다. 아무래도 성악설에 가깝겠죠?
경영저서를 50여 권 쓴 것으로도 유명한 이타미 교수는 성약설을 주장합니다. 그는 위 책에서 “인간은 선하지만 약할 뿐”이라며 사악함과 싸우지 말고 어리석음을 극복하라고 주문합니다. 인간의 욕망은 아름다우면서도 추하다고 합니다. 자신에게 이득이 되는 방향을 선택할 뿐인데 그게 과도하면 사악해 보인다는 뜻이겠죠.
▽저희 사진기자들은 취재 현장에서 ‘차갑다’는 소리를 듣습니다. 희생자가 있는 재난 사고 현장에서조차 너무 냉정하게 취재하기 때문이죠. ‘기*기’ 소리도 듣습니다. 차가운 카메라를 들었지만 사진기자들이라고 피해자와 피해자 가족에게 공감하는 게 없겠습니까. 그분들의 슬픔과 고통이 그대로 파고들어와 울컥할 때가 많습니다. 카메라 뒤에서 눈물을 흘리는 사진기자도 있습니다. 다만, 현장에서 평정심을 잃으면 안 되기에 무뚝뚝하게 하는 행동들이 자칫 차갑게 보일 수 있어 송구스런 마음이 듭니다. 사진기자들도 악하지도 선하지도 않습니다. 모두 약한 존재들입니다.
▽1868년까지 신대륙 호주로 보내진 영국 죄수는 약 16만 2천 여 명이었습니다. 북미보다 훨씬 먼 지구 반대편 호주까지 식민지를 개척하기 위해 가려는 본토인이 적은데다, 산업혁명 이후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범죄자가 너무 늘어 감옥이 턱없이 부족했기 때문이죠. 호주로 간 죄수는 일정 기간 노역을 끝내면 자유가 보장됐습니다.
그런데 배를 타고 가는 도중 많은 죄수들이 죽었습니다. 배가 출항할 때에 비해 10~20%가 줄어든 채 호주에 도착했죠. 아무리 죄수라지만 너무 가혹하다는 여론이 들끓었습니다. 배안에서 굶어죽은 죄수들이 많다고 알려지자 영국정부는 충분한 식량과 약품을 지원하죠. 그런데도 항해 도중 사망하는 비율을 줄어들지 않았습니다.
이유는 나중에야 알려졌습니다. 선장들이 식량과 약품을 빼돌렸기 때문이죠. 선장 입장에서는 죄수가 죽을수록 자신의 이득을 더 챙길 수 있으니 죽음을 나몰라라 방치한 것이고요. 신앙심이 높은 선장을 배치하고 인권감시관도 뒀으나 결과는 별 차이가 없었습니다.
결국 영국정부는 작전을 바꿉니다. 선장의 보수 조건을, 배에 태운 죄수 숫자가 아닌 호주 땅에 도착한 뒤 살아있는 죄수 숫자를 기준으로 계산해 지급하기로 했죠. 이후 사망자 비율이 한자리 숫자 이하로 줄었다고 합니다. 선장들이 죄수들이 죽지 않도록 노력했으니까요.
▽‘선의’로 모든 문제해결을 하면 참 좋겠지요. 또 선의를 가진 사람들이 많아져야 세상이 아름다워 질 것이라 보는 시각도 있습니다. 하지만 의도가 좋다고 결과가 좋은 것은 아니죠(물론 의도가 나쁘면 결과는 거의 나쁩니다). 누구나 이기적입니다만, 잘못된 것은 아니죠. 그저 당연한 것일 뿐입니다.
이기심은 선하지도 않고 나쁜 마음도 아닙니다. 이기심엔 이념이 없으니까요. 이기심을 선한 방향으로 이끄느냐, 악한 방향으로 이끄느냐는 우리에게 달려 있습니다. 그것이 공동체의 역할이고 시스템의 힘이겠지요.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부지런히 의사결정을 하며 각 구성원의 이기심을 얼마나 통제할 수 있느냐, 즉 통제력을 키우는 문제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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