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 오후 7시50분 방송된 TV조선 ‘스타다큐 마이웨이’에서 대중가요계 원조 디바 가수 현미의 파란만장한 인생을 조명했다. 1962년 노래 ‘밤안개’로 데뷔한 현미는 ‘보고 싶은 얼굴’, ‘떠날 때는 말없이’ 등 다수의 히트곡을 발매하며 한국에서 보기 드문 재즈 창법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그런데 늘 화려하고 밝은 모습을 유지하는 현미지만 그녀에게도 가슴을 사무치게 하는 사연이 있다. 어린 시절 가족들과 평양에서 넘어온 현미는 생계를 위해 우연히 미8군 부대에서 노래 부르게 되며 음악 인생을 시작하게 됐다. 특히 그녀의 저음 목소리는 미군 관객들을 단숨에 사로잡았고, 당시 밴드 세션의 마스터였던 작곡가 이봉조도 빠져들었다.
훗날 훌륭한 색소폰 연주자이자 ‘천재’ 작곡가, 영화음악 감독으로 명성을 떨친 이봉조는 현미의 능력을 단번에 알아보고, 그녀 인생곡 ‘밤안개’를 선물하게 된다. 이후 두 사람은 많은 작업을 함께하며 사랑에 빠져 결혼식을 올린다.
현미는 그렇게 아들 두 명을 낳고 행복할 줄만 알았지만, 불행은 가장 행복한 순간 찾아왔다. 남편 이봉조가 사실 유부남에 아이까지 있었던 것. 26세에 이미 딸 둘이 있는 유부남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미 현미 뱃속에도 아이가 자라고 있었다. 이에 자신을 선택한 이봉조와 두 아들을 낳으며 결혼을 시작했다.
하지만 현미는 다시 본처에게 돌려 보내는게 맞다고 생각했다. 현미는 (이별 통보 후 이봉조가) 술을 많이 먹고 와서 야구방망이를 가지고 살림을 부쉈다“고 안타까워했다. 그럼에도 충격을 받은 현미는 그를 밀어내려고 애썼지만, 현미가 아니면 혼자를 선택하겠다던 이봉조는 1987년 여름 향년 56세의 나이로 고독하게 삶을 마감한다.
현미는 ”그 잘생긴 사람이 말라서 ‘내가 이렇게 불쌍하게 살고 있는데 날 안 받아 줄 거냐(하더라고요.)’ 내가 다시 모실 거니까 건강하게 살자고 그랬는데,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 우리 운명이 그것밖에 안 되었나 보다“라고 당시 심경을 전한다.
한편, 이날 방송에서 현미는 가장 힘들었던 순간 그녀를 도와준 친구 배우 엄앵란도 만났다. 방송 활동을 중단하고 4년간 투병의 시간을 보내온 엄앵란이 현미를 위해 나선 것이다. 축복 속에 한 결혼이었지만 순탄치 않았던 생활, 그 공통점을 시작으로 두 사람은 데칼코마니 같은 인생을 이어오고 있다. 올해로 60년 지기 친구인 두 사람은 그간 근황과 추억 이야기를 나누며 오붓한 시간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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