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인 감독이 만든 영화 제목이 ‘아줌마’다. 영어 제목 역시 ‘Ajoomma(아줌마)’. 제목만으로도 호기심을 자극하는 이 영화는 14일까지 진행되는 제27회 부산국제영화제에 공식 초청된 작품. 영화제 기간 3차례 공식 상영이 모두 매진되는 등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주인공은 3년 전 남편과 사별하고 성인 아들과 단둘이 사는 싱가포르 아줌마 림메이화(홍휘팡). 림메이화는 집안일을 할 때든 밥을 먹을 때든 늘 한국 드라마를 틀어놓는 K드라마 열성 팬이다. 한국 드라마를 보고 대사를 따라 하는 것이 유일한 낙. 아들과 함께 한국 드라마 유명 촬영지를 돌아보는 여행을 가기로 한 림메이화는 한껏 들떴지만 이도 잠시, 아들은 회사 면접이 잡혀 여행을 못 간다고 한다. 환불이 안 된다는 여행사 직원 말에 림메이화는 난생처음 홀로 한국 땅을 밟는다. 그러나 관광버스가 자신만 두고 떠나버리는 바람에 홀로 낙오되면서 여행은 제대로 시작도 못 해보고 꼬여버린다.
영화는 한국과 싱가포르의 첫 합작 영화. 7일 부산 현지에서 연 기자회견과 관객과의 대화 등에서 허슈밍 감독은 “실제로 어머니가 한국 드라마 3, 4개를 동시에 볼 정도로 정말 좋아하신다”며 “이런 어머니의 모습을 보며 나와 어머니의 관계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 그것이 영화의 시작이었다”라고 했다.
주인공은 싱가포르 국민배우 홍휘팡. 홍휘팡은 “나 역시 한국 드라마에 푹 빠져 사는 아줌마”라고 소개했다. 영화에는 주연인 관광 가이드 역의 배우 강형석을 비롯해 정동환, 여진구 등 한국 배우들도 다수 출연한다. 홍휘팡은 “한국 배우들과 작업한다고 했을 때 언어장벽 때문에 힘들겠다고 생각했는데 눈빛만으로도 소통이 다 되더라”고 말하며 웃었다. 영화는 80% 이상 한국에서 촬영됐고 대사 대부분은 한국어다.
영화는 단순히 한국 드라마를 좋아하는 아줌마 이야기를 보여주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이른바 한국 관객들을 상대로 ‘국뽕’을 자극하거나 중년 여성의 쓸쓸함을 과도하게 부각하는 방식의 신파로 흘러가지 않는다. 한국 드라마는 매개일 뿐, 중년 여성이 인생의 주체로 거듭나는 등 성장하는 이야기를 비교적 담담하게 보여주는 것이 영화의 핵심이다. 국적을 떠나 모두의 어머니 이야기인 셈. 영화에서 여러 차례 나오는 K팝 주제곡 ‘여성시대’(다비치 등)의 가사는 이 영화의 메시지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 “아직 웃을 날이 많은데 여태 그걸 몰랐어. (중략) 내 인생을 사는 거야. 화장하고 머리를 자르고 멋진 여자로 태어날 거야.“
허 감독이 이 영화 아이디어를 낸 건 2015년 12월. 실제 제작까지는 6년이 넘게 걸렸다. 감독의 장편 데뷔작인데다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탓에 투자받기 쉽지 않았다. 앤소니 첸 프로듀서는 “허 감독 아이디어를 처음 들었을 때 상당히 좋은 아이디어지만 제작이 쉽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유명 감독, 유명 프로듀서면 일이 수월했겠지만…”이라며 “지난한 협상 과정을 거쳐야 했다”고 말했다. 영화는 한국 영화진흥위원회 등의 지원을 받아 제작됐다.
7일 저녁 세계 최초로 영화가 상영된 뒤 허 감독은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그는 “정말 감동적이다. 나에겐 평생 잊지 못할 밤이 될 것”이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엄마가 자식에게 헌신하지 않았다면 어떤 삶을 살았을까 하는 생각을 하며 영화를 만들었습니다. 중년 여성들에게 희망을 던지고 싶었습니다. 제 데뷔작을 부산에서 처음 선보일 수 있어 큰 영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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