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남강 ‘빛의 루: 물빛나루쉼터’, 한국목조건축대전 준공부문 대상
나무 엇갈려 쌓은 ‘다포양식’ 기둥, 못-철골 없이도 든든히 지붕 받쳐
설계자 김재경 한양대 교수
“전통적 방식에 현대적 해석 담아… 함께 누리는 공공건축물 됐으면”
경남 진주가 사랑하는 지방문화재 촉석루(矗石樓). 논개의 충절이 밴 벼랑 위 팔작지붕은 도도히 흐르는 남강과 그림처럼 어우러진다. 그리고 올해, 남강엔 또 하나의 절경 ‘21세기 촉석루’가 들어섰다.
올해 3월 촉석루에서 약 2km 떨어진 강변 산책로에 ‘빛의 루: 물빛나루쉼터’가 완공됐다. 10일 찾아간 빛의 루는, 강 건너에서 바라보면 바닥에 깐 기단 덕에 흡사 강물 위에 두둥실 떠 있는 배처럼 보였다. 오목하게 휘어진 지붕은 촉석루의 유려한 곡선미를 닮았다. 지난달 한국목조건축협회의 ‘2022 대한민국목조건축대전’에서 준공부문 대상을 받은 이유가 절로 수긍이 갔다.
오후 무렵 제법 쌀쌀해진 날씨. 오가던 시민들은 찬 바람을 피해 빛의 루 안으로 모여들었다. 전면을 감싼 통유리창을 통해 밖에서도 볼 수 있는 내부의 나무기둥 6개는 서로 겹겹으로 얽히고설켜 지붕을 받치고 있다. “우와, 예술이네”란 감탄사가 여기저기서 들렸다.
동행한 김재경 한양대 건축학부 교수(45)는 “부제인 물빛나루쉼터에서 알 수 있듯, 빛의 루는 모두 함께 누리는 공공건축물”이라며 “특정인만 즐기는 예술품이 아니기에 설계 때부터 조형적으로 더 아름다웠으면 좋겠다는 목표를 세웠다”고 했다. 목조건축협회 역시 “공공건축물의 예술성을 높였다”는 점에 높은 점수를 준 것으로 알려졌다.
김 교수는 2020년 처음 건축 의뢰를 받았을 때만 해도 부담이 컸다고 한다. 진주가 한국 근현대 건축사에서 갖는 상징성 때문이었다. 김 교수는 “진주는 진주성 촉석루를 제외하면 6·25전쟁 등을 거치며 많은 전통 건축물을 소실하는 아픔을 겪었다. 하지만 김수근 선생(1931∼1986)과 김중업 선생(1922∼1988)이 전통 건축의 멋을 살린 국립진주박물관과 경남문화예술관을 지어 진주 건축에 깊은 풍미를 더했다”고 설명했다.
“위대한 선배들이 남긴 유산 위에 무엇을 더 보탤 수 있을지 고민이 많았죠. 고심 끝에 가장 전통적인 방식인 목조 구조물을 기본으로, 가장 현대적인 해석을 담은 촉석루를 지어 보자고 결심했어요. 못 같은 금속은 최대한 배제하고, 선조들 방식처럼 목재를 서로 엇갈리게 짜 맞췄습니다.”
나무를 엇갈리게 맞춰 쌓아 올린 ‘다포(多包) 양식’의 기둥들 덕분일까. 철골이나 콘크리트를 전혀 쓰지 않았는데도 빛의 루는 오래 세월 뿌리내린 듯한 견고함이 묻어났다. 실제로 나무기둥을 꼼꼼히 들여다보면 수백 개의 조각이 정교하게 맞물려 있다. 김 교수는 “목재는 엇갈리며 하중을 지탱하면 금속이 없어도 스스로 지붕을 받치는 물성을 지니고 있다”고 했다.
그 대신 건축 기간이 오래 걸렸다. 설계도 완성 9개월을 포함해 완공까지 약 2년이 걸렸다. 못질을 최소화하고 나무를 짜 맞추다 보니 일반 건축 공정보다 3배 넘는 시간이 든 셈이다. 특히 하나의 조각이라도 틀어지면 전체적 틀이 망가져 디지털 시뮬레이션을 통해 최적의 구조를 찾는 작업이 쉽지 않았다. 김 교수는 “진주시는 단 한 번도 언제 완공되느냐고 재촉한 적이 없다”며 “오히려 ‘더 과감하고 자유롭게 설계해 달라’고 했을 정도”라고 했다. 진주시는 2019년 경남에서 처음 ‘공공건축가 제도’를 도입한 뒤 공공건축물의 예술적 시도에 매우 적극적이다.
“누군가는 나무기둥이 복잡해서 별로라 느낄 수도 있어요. 그런 반응 역시 시민들의 자유죠. 이런 색다른 공공건축물이 늘어나는 건 더 많은 분들이 건축예술을 일상처럼 누릴 기회도 많아진다는 뜻이겠죠. 그럼 우리가 예술을 받아들이는 공감대도 훨씬 커지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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