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은 불러보았다’ 著 정회옥 교수
“일제강점기부터 무비판적 수용… 부끄러워도 마주해야 하는 진실”
“인종 차별은 한국에서 최근에 벌어지는 현상이 아니에요. 이미 개화기부터 150년 넘게 우리 사회에 깊게 밴 문제라고 인식하는 게 중요합니다.”
‘흑형’ ‘짱깨’ ‘튀기’…. 한국 사회에서 차별적 혐오 표현은 어디서부터 비롯된 걸까. 지난달 28일 ‘한 번은 불러보았다’(위즈덤하우스)를 출간한 정회옥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46·사진)는 우리의 예상보다도 그 뿌리는 훨씬 깊고 오래됐다고 강조한다. 6일 서울 서대문구 명지대에서 만난 그는 “심지어 일제강점기 ‘독립신문’ ‘한성순보’조차 흑인을 차별하고 백인을 예찬하는 차별적 문장이 가득했다”며 “다소 민망하고 부끄럽더라도 우리가 마주해야 하는 역사적 진실”이라고 말했다.
정 교수에 따르면 ‘인종 차별이 없는 대한민국’은 소망을 품을 순 있겠지만 지금까지의 역사를 되짚어 봤을 땐 허상에 가깝다. “흑인은 동양인보다 미련하고 백인보다 천하다”, “야만스러운 풍속을 지닌 인디언은 백인들과 겨룰 수 없어지자 스스로 외진 곳으로 물러났다”…. 우리가 자긍심을 가졌던 독립신문에 실린 표현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다.
“안타깝지만 일제강점기 지식인들은 서구나 일본 제국주의와 맞서면서도 그들이 내세웠던 인종 차별적 논리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한 측면이 큽니다. 그런 경향이 지금까지 이어졌다고 봐요. 당장 이런 현실을 제대로 마주하지 않으면 인종 차별은 계속해서 번식해 나갈 겁니다.”
정 교수는 최근 인터넷 등에서 청년 세대를 중심으로 유행했던 ‘흑형’이란 표현도 “친근함의 탈을 쓴 인종 차별”이라고 짚었다. 그는 “대학 강의에서 학생들에게 ‘흑형’에 대한 의견을 물으면 90%가 인종 차별이 아니라고 답한다”며 “하지만 백인에겐 ‘백형’이란 표현을 쓰지 않는 것을 떠올려 보면 특정 인종의 집단화가 왜 차별인지 깨달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책 제목에 별다른 주어가 없는 이유도 “우리 모두의 머릿속에 자리 잡은 인종주의를 돌아보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그리고 그 마지막 장에는 스스로를 돌아보는 자성적인 얘기도 담았다.
“어릴 때 유난히 까무잡잡했던 저를 친구들은 ‘깜순이’라는 별명으로 불렀어요. 그 어린 마음에도 검은 피부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깊이 배어 있었던 겁니다. 그걸 갖고 과연 아이들을 탓할 수 있을까요. 우리 사회 전체의 문제였던 거죠. 부끄럽더라도 이제는 우리 안의 인종 차별주의를 제대로 들여다보자는 게 제 책의 의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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