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세 여성 슬아는 생활형 작가이자 “출판계는 불황”이란 말에 항상 짓눌리는 소규모 출판사 대표. 매일 업무와 강의 등에 쫓기며 고군분투한다. 그런 슬아가 가족 생계를 위해 엄마 아빠를 출판사 직원으로 채용한다. 가부장이 아닌 ‘가녀장(家女長)’이 된 슬아는 과연 잘해낼 수 있을까.
7일 출간된 ‘가녀장의 시대’(이야기장수)는 경계가 애매모호한 소설이다. 지은이는 출판사 대표이며 에세이 시리즈로 주목받은 이슬아 작가(30). 소설도 이게 실제 경험담인지 픽션인지 구분하기 어렵다. 실제로 이 작가는 가족과 함께 출판사를 꾸린 경험이 있다고 한다.
최근 출판계에서 이 작가처럼 에세이나 교양서로 화제를 모은 작가들이 소설가로 데뷔하며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소셜미디어를 통해 이미 탄탄한 팬덤을 구축하고 있어, 책 판매량은 기존 정통 소설가들을 넘어서는 분위기다.
집안의 경제권을 쥔 주인공 슬아의 좌충우돌을 그린 ‘가녀장의 시대’도 마찬가지다. 출간되자마자 온라인서점 알라딘에서 이달 둘째 주 종합순위 5위에 오르더니, 벌써 1만 부 이상이 팔렸다. 이연실 이야기장수 대표는 “이 작가는 유료로 제공하는 에세이 시리즈 ‘일간 이슬아’로 20, 30대 여성들 사이에 엄청난 팬덤이 형성돼 있다”며 “별다른 비유나 수사가 없는 간결한 문체와 현학적이지 않고 쉽게 공감할 수 있는 주제가 독자들을 사로잡고 있다”고 분석했다.
같은 날 출간된 단편소설집 ‘언러키 스타트업’(민음사)도 에세이 작가인 정지음이 펴낸 첫 소설집. 정 작가는 지난해 6월 자신의 정신질환을 털어놓은 첫 에세이집 ‘젊은 ADHD의 슬픔’(민음사)이 약 2만 부가 팔리며 ‘핫한’ 작가로 떠올랐다. 단편소설집도 여러 온라인서점에서 소설 부문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박혜진 민음사 문학2팀장은 “정 작가가 자신이 겪은 황당한 에피소드를 자신의 블로그에 에세이로 써뒀다가 이를 모아 소설로 개작해 출판했다”며 “현실에 바탕을 둔 소재라서 그런지 누구에게나 벌어질 수 있는 사건이란 공감을 주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인문교양서 베스트셀러 작가의 소설도 관심을 끌고 있다. 작가 채사장은 2014∼2020년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시리즈로 300만 부 이상을 판매한 파워작가. 지난해 12월 출간한 장편소설 ‘소마’(웨일북)는 문학적 평가는 다소 엇갈리지만 꾸준하게 잘 나가는 스테디셀러로 자리 잡았다. 올해 5월 리커버북이 출간될 정도로 팬층이 두껍다.
표정훈 출판평론가는 “소설을 범접하기 어려운 예술 장르가 아니라 영화나 드라마, 웹툰처럼 여러 ‘이야기’를 풀어내는 방식 가운데 하나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커졌다”며 “과거보다 소설의 문학성에 대한 잣대가 덜 엄격해지면서 문장을 쉽게 쓰고 기획력이 좋은 에세이·교양서 작가들의 소설 집필이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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