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다큐 제작자 엥겔하트
6년간 美-벨기에 등 돌아다니며 존엄사 현장 담은 ‘죽음의 격’ 출간
‘지하 안락사 조직’ 실태도 그려
2019년 암을 앓고 있던 89세 브래드쇼 퍼킨스 주니어는 미국 캘리포니아주의 한 병원에 누워 생의 마지막 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세 자녀는 아버지의 ‘죽음 예정일’에 맞춰 그의 곁을 지켰다. 브래드쇼는 침대 맡에 서 있는 자녀들에게 그동안 “사랑했고 고마웠다”는 작별 인사를 남겼다. 마침내 의사가 건넨 약물을 삼키자, 그는 고통 없이 평온한 죽음을 맞았다.
캐나다 다큐멘터리 제작자인 케이티 엥겔하트(사진)는 최근 동아일보와의 e메일 인터뷰에서 “브래드쇼의 마지막 순간을 지금까지도 잊지 못한다. 그것은 분명 ‘의미 있는 죽음’이었다”고 했다. 올해 8월 국내에 출간된 ‘죽음의 격’(은행나무)을 쓴 엥겔하트는 2015년부터 6년간 세계를 다니며 존엄사를 선택한 이들의 마지막을 지켜본 과정을 책에 담았다.
“브래드쇼가 그런 마지막을 맞이할 수 있었던 건 캘리포니아주가 2015년 존엄조력사법과 같은 의미를 지닌 ‘생애말기선택권법’을 시행했기 때문이에요. 이 법이 시행된 직후부터 캘리포니아에서는 조력사 의료 영업이라는 새로운 의료산업이 주목받고 있어요. 한 사회가 법 시행 뒤 바뀌는 모습이 흥미롭습니다.”
엥겔하트는 1994년 미 오리건주에서 세계 최초로 존엄조력사법이 통과된 뒤로 벨기에와 네덜란드, 룩셈부르크, 스위스 등 관련법을 도입한 나라를 두루 살폈다. 국내에서는 올 6월 국회에서 존엄조력사법이 발의된 상태다.
엥겔하트는 이 과정에서 ‘지하 안락사 조직’의 실태에 대해 경고하기도 했다. 그는 “뉴욕 맨해튼에 거주하던 한 은퇴한 변호사는 안락사용 불법 약물을 사려고 멕시코로 여행을 가기도 했다”며 “현재 세계 곳곳에는 죽음에 이를 수 있는 약물을 대리해서 구매하거나 대신 투약해주는 조직이 존재하고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고령사회로 접어들수록 불법적인 경로로 약물을 구매해 안락사를 시도하려는 이들이 늘어날 것으로 내다봤다.
“질병의 고통에 놓인 이들은 기다릴 여유가 없습니다. 우리가 존엄조력사법을 논의할 때 가장 중요시해야 하는 건 종교나 윤리의 잣대가 아니라 병상에서 고통받고 있는 환자의 마음이 아닐까요. 고령사회로 접어들수록 정부와 사회가 이들의 고통에 하루빨리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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