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손에 뭘 들었느냐에 따라 달라져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10월 20일 03시 00분


아동문학상 휩쓴 유명작가인
폴란드 출신 흐미엘레프스카
비룡소와 협력해 ‘우화’ 출간
우크라-러 전쟁과 난민 등 혼란스러운 유럽 보며 작품 써

그림책 ‘우화’에서 두 남성은 자세는 똑같지만 왼쪽은 조리용 삽을, 오른쪽은 창을 들고 있다. 비룡소 제공
그림책 ‘우화’에서 두 남성은 자세는 똑같지만 왼쪽은 조리용 삽을, 오른쪽은 창을 들고 있다. 비룡소 제공
그림책 양 페이지에 사내가 한 명씩 섰다. 살짝 벗겨진 머리, 바지 아래 맨발…. 둘은 쌍둥이처럼 닮았다. 기다란 막대기를 든 포즈마저 같다. 그런데 왼쪽 남성이 든 막대기는 끝이 뭉뚝한 삽이다. 그 삽에 빵을 올려 화덕에 넣고 있다. 반면 오른쪽 남성의 막대기 끝은 뾰족하고 빨갛다. 뭔가를 찌른 뒤 붉게 물든 창(槍)이다.

7일 출간된 그림책 ‘우화’(비룡소)는 비슷하지만 다른 인간의 상반된 모습들이 묵직하게 이어진다. 17일 화상으로 만난 폴란드 작가 이보나 흐미엘레프스카(62·사진)도 그림처럼 사뭇 진지해 철학자나 인문학자 느낌이 물씬했다.

“유럽인에게 주식인 빵을 굽는 건 사람을 먹여 ‘살리는’ 행위입니다. 그런데 같은 자세인 남성의 손에 창이 있다고 생각해 보세요. 그건 죽음과 맞닿아 있죠. 인간은 ‘손에 뭘 쥐고 있느냐’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는 걸 보여줍니다.”

흐미엘레프스카는 세계 3대 아동문학상 가운데 하나인 ‘이탈리아 볼로냐 라가치상’을 3차례나 받은 유명 작가다. 올해 3월 이수지 작가가 한국인 최초로 수상한 ‘어린이책의 노벨 문학상’으로 불리는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상’ 최종 후보에도 3차례 오를 정도로 그의 작품은 세계적인 화제를 모은다.

‘우화’는 기획 때부터 비룡소와 협업해 이번이 세계 첫 출간이다. 흐미엘레프스카는 평소 한국에 관심이 많아 2005년 한글 자모를 형상화한 ‘생각하는 ㄱㄴㄷ’(논장)을 이지원 작가와 펴내기도 했다. 그는 “한국은 열정적이고 시스템이 체계적이라 함께 일하기 좋다”고 했다.

‘우화’를 그린 계기는 최근 유럽에 불어닥친 혼란이었다. 흐미엘레프스카는 “지난해 난민을 둘러싼 벨라루스와 폴란드의 갈등이나 올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이 작품에 영향을 끼쳤다”고 했다. 그림책에서 우산을 쓴 여성과 총을 겨눈 여성, 꽃다발 든 남성과 수갑이 채워진 남성이 “대비된 평화와 폭력”을 줄곧 떠올리게 한다.

“저는 폴란드의 작고 조용한 동네에 삽니다. 그런 마을에도 우크라이나 난민이 많아요. 여성들은 먹고살기 위해 거리에서 음식을 팔고, 아이들은 발버둥치죠. 폴란드인도 러시아가 쳐들어올까 봐 두려워해요. 폭력과 전쟁의 비극이 그림책에 가득한 걸 부정할 수 없네요.”

그림책 속 수많은 인물들은 공통점이 있다. 모두 어딘가를 응시한다. 눈빛을 볼 순 없지만 뒷모습에선 절망과 긴장감이 배어난다. 글이 없어 생각을 쉽게 짐작하기 어려운 그들은 어떤 얘기를 들려주고 싶은 걸까.

“(글을 쓰지 않은 건) 보여주고 싶은 것만 전달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에요. 설명하지 않을 때, 독자들은 뭔가 다른 것을 찾아냅니다. 제 목소리는 작아서 폭력과 전쟁을 멈출 수 없어요. 하지만 책을 읽은 독자들은 세상을 바꿀 수 있지 않을까요.”

#우화#아동문학상#흐미엘레프스카#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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