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원치않는 일 겪기 마련… 어떻게 살아남는가 그리고 싶었다”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10월 20일 03시 00분


이승우 작가 신작 ‘이국에서’ 출간
시장의 뇌물의혹 뒤집어쓴 남자… 아프리카로 떠나 기약 없는 삶
갑자기 마주친 5·18 관련 사건… 아버지의 과거도 들여다보게 돼
“단절과 폐쇄, 그리고 완벽한 고립 속 우리도 주인공처럼 고민하게 될 것”

“휴가라고 생각해. 그동안 쉬지 않고 일했잖아.”

한 광역시 시장의 측근인 황선호는 6개월 동안 한국을 떠나라는 지시를 받는다. 유력 대선 후보로 꼽히는 시장은 건설사로부터 뇌물을 받았다는 논란에 휩싸였다. 이를 무마하려 황선호에게 죄를 뒤집어쓰라고 지시한 것. 시장은 “부탁한다”고 했지만, 그는 알고 있었다. 비리의 주도자가 되거나 시장 곁에서 쫓겨나거나. 그에게 주어진 선택지는 많지 않았다. 결국 황선호는 머나먼 아프리카에 있는 ‘보보민주공화국’이란 곳으로 간다. 14일 출간된 장편소설 ‘이국에서’(은행나무·작은 사진)는 자기 의지와 상관없이 고국을 떠난 한 남성의 고독한 여정이 담겨 있다. 현대문학상 이상문학상 황순원문학상 등을 받은 이승우 작가(63·큰 사진)의 신작. 그가 장편을 선보인 건 2019년 8월 ‘캉탕’(현대문학) 이후 3년 만이다. 18일 전화 인터뷰를 한 이 작가는 “현실 정치가 떠오른다”고 하자 특정 사건을 모티브로 쓴 건 아니라고 했다.

“황선호가 겪는 일이 한국 정치에서 충분히 일어날 법한 일이라 생각되긴 합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자신이 원치 않은 선택을 강요받는 경우가 있잖아요. 그 상황에서 어떻게 살아남아야 하는가를 그리고 싶어서 정치적인 사건을 (보조 장치로) 택했죠.”

황선호는 도시 3개를 경유해 26시간 만에 보보민주공화국에 도착한다. 누군가의 눈에 띄지 않으려 낡은 호텔에서 오랫동안 은신한다. 이따금 거리를 걷긴 하지만 시장에게 피해를 줄까 봐 한국에는 연락도 하지 않는다.

상당히 무거운 주제지만 내밀한 심리 묘사와 유려한 문장 덕에 소설은 술술 읽힌다. 어딘지 모를 이국에 갇혀버린 그의 상황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해 갇혀 지낸 우리 모습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2018, 2019년 문학잡지 ‘악스트’에 연재한 걸 3년에 걸쳐 틈틈이 고쳤어요. 코로나19가 심각하던 시기에 개작한 만큼 단절과 폐쇄에 대한 정서가 짙게 묻어 있죠. 완벽한 고립 상태에서 자신의 인생에 대한 고민을 시작하는 것. 황선호와 우리 모두 비슷하지 않았을까요.”

하지만 보보민주공화국의 상황도 심상치 않다. 정치적 혼란이 거세지며 외국인에 대한 제재도 엄격해진다. 황선호는 쫓겨나지 않으려 여러 방편을 찾는다. 그러다 우연히 이 머나먼 땅에서 5·18민주화운동과 관련된 ‘어떤 사건’을 마주하게 되는데….

“개개인의 인생도 결국은 집단의 문제에서 비롯된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다만 5·18민주화운동을 다룰 때는 혹시나 도구적으로 소비하는 것처럼 보일까 봐 조심스럽게 접근했습니다.”

그 사건은 황선호가 그동안 알지 못했던 아버지의 과거로 이어지며 소설은 전혀 다른 국면을 맞는다. 황선호가 자신의 뿌리를 찾아가는 서사는 작가의 1982년 장편소설 ‘생의 이면’(문이당)이 떠오른다. 작가의 자전적 경험을 담았던 당시처럼, 이번에도 그의 삶이 투영된 걸까. 그는 망설이다 긴 침묵 끝에 말했다.

“전 여덟 살 때 아버지를 잃었어요. 그 뒤로 고향(전남 장흥)을 떠나 한참 동안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의도적으로 쓴 건 아니지만, 작품에 어릴 적 제 경험과 기억이 어쩔 수 없이 담기는 것 같아요. 태어난 곳에서 멀어졌다가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는 서사를 놓지 못하는 이유입니다.”

#이승우 작가#이국에서#단절과 폐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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