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의 주인이 수십 번 바뀌는 동안에도 흔들림 없이 제자리를 지킨 나무들이 있다. 청와대 수궁 터에 있는 744년 된 주목(朱木)은 청와대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고목나무다. 오랜 세월을 버틴 탓일까. 자그마한 키에 몸체 대부분이 죽어버려 속은 텅 비었지만 지금도 여름이 찾아오면 푸른 이파리를 만발하는 강인한 생명력을 지녔다. 비단 주목뿐일까. 청와대에는 현재 100년이 넘은 고목나무가 무려 총 43그루나 있다.
올 5월 10일 청와대가 개방된 뒤 역대 대통령이 거주했던 관저와 귀빈을 맞던 상춘재 등 건물들은 큰 관심을 받았지만, 청와대에 있는 5만5000여 그루의 나무들은 이름 없이 스쳐지나가는 등산로의 조연에 불과했다. 경북대 산림학 명예교수인 저자는 2019년 대통령경호처의 의뢰로 청와대 경내에 있는 나무 208종을 조사해 연구서 ‘청와대의 나무와 풀꽃’(2019년)에 담아냈다. 책에는 청와대 통행로를 따라 쉽게 만나볼 수 있는 나무 등 85종을 추려 상세한 해설을 담았다. 저자는 “더 많은 이들에게 청와대 나무에 얽힌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었다”고 말한다.
저자가 역대 대통령들이 청와대 경내에 심은 기념식수 속에서 정치적인 의미를 짚어내는 대목도 흥미롭다. 2003년 노무현 당시 대통령이 청와대 인근 등산로에 심은 서어나무는 꽃이 아름답지도, 열매가 달리지도 않아 못생긴 축에 속한다. 특징이 있다면 여느 산에서 만날 수 있는 흔하디흔한 나무라는 것. 저자는 “서어나무에는 친서민과 탈권위를 강조한 노 전 대통령의 철학이 담겼다”고 풀이한다.
책 첫 번째 장에는 ‘청와대 나무 지도’를 담았다. 말채나무, 팥배나무, 오갈피나무, 섬괴불나무, 때죽나무…. 청와대를 관람할 때 난생처음 듣는 나무의 이름으로 빼곡한 이 지도를 펼쳐 보며 산책해 보면 어떨까. 어쩌면 청와대의 진정한 주인은 세상이 변해도 오랜 시간 자신의 자리를 지켜온 이 나무들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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