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복 한국연구재단 이사장 인터뷰
코로나19 이후로 불균형 심화돼… 자신과 타인의 정체성 성찰해야
포스트 팬데믹 시대로 들어서며 인문학의 위상-역할 더욱 커져
과학기술의 급속한 발전에도 협력 위해선 인문학적 소양 중요
한국연구재단은 2006년부터 교육부와 함께 매년 인문주간을 주최하고 있다. 제17회를 맞은 올해 인문주간 행사는 ‘포스트 팬데믹 시대, 미래를 여는 인문학’이라는 주제로 인문학이 코로나19 이후 시대를 어떻게 그려 나가야 할지에 대한 해답을 제시한다. 일상의 회복으로 나아가고 있는 가운데 이광복 한국연구재단 이사장(사진)으로부터 인문주간의 의미와 연구재단의 역할 그리고 미래에 대해 들어 봤다.
―올해 인문주간의 주제는 어떤 의미를 담고 있습니까.
“우리는 장기간의 코로나 팬데믹을 경험하면서 많은 위기를 겪어 왔습니다. 이제 코로나가 어느 정도 잠잠해지고 있다고 하지만 지금 말하는 ‘일상 회복’은 예전과 똑같은 상태로의 회귀를 의미하지 않는다고 봅니다. 너무 많은 위기를 겪어 왔고 그 과정에서 국가 간, 성별, 인종, 직업 등에서 보이지 않던 위계와 불균형을 목격했기 때문이죠. 코로나 시대를 살아오면서 감춰져 있던 경계를 재발견하게 된 겁니다. 이제는 ‘나’와 ‘우리’의 정체성과 역량에 대한 인문학적 물음을 성찰하고, 미래를 대비하는 가치와 제도에 관해 인문학 나름의 대답을 준비해야 할 때입니다. 그만큼 인문학의 위상과 역할이 더욱 커진 것이죠. ‘포스트 팬데믹 시대, 미래를 여는 인문학’이라는 주제는 우리 자신을 돌아보고, 타인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인문학적 성찰의 시간을 접함으로써 코로나19 이후 시대를 함께 준비하자는 의도를 담고 있습니다.”
―이사장 취임 후 인문학 확산을 위해 각별히 신경 쓰고 있다는 평가입니다.
“사회가 급격하게 변하면서 드러난 것은 생각보다 우리 주변에 인문학 취약 계층이 많다는 사실입니다. 빈부 격차와는 별개로 인문학을 쉽게 접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생겨난 것이죠. 한국연구재단은 이런 불균형 해소를 위해 다방면으로 노력하고 있어요.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인문학 전문가 풀(Pool) 활용 소외계층 강연 지원 프로그램’입니다. 교정시설, 사회복지시설, 군부대, 다문화센터 등 인문학을 접하기 어려운 기관이나 지역의 초중고를 인문학 전문가와 연결하고, 파견형 강연을 통해 인문학의 가치를 확산하고 있습니다. 9월부터 시작한 이 프로그램은 11월까지 총 34회 진행될 예정입니다. 문학, 철학, 사학 등 인문학 관련 분야에 한해 교육을 하고 있고, 예술 체육 등의 분야와 융·복합된 강연과 교육도 가능합니다.”
―과학기술이 빠르게 발전하고 있습니다. 코로나19라는 큰 변화를 겪은 상황에서 앞으로 인문학은 어떤 방향으로 나가야 할까요.
“과학기술의 급속한 발전으로 우리 주변 환경이 매일 달라지고 있습니다. 기술 발전이 때로는 인간의 존엄성을 위협하기도 하고, 기존의 생산·산업 체제를 뒤바꾸기도 하죠. 이로 인해 기후 위기를 겪고 있으며 강력한 신종 바이러스의 재출현을 예고하는 전문가도 있습니다. 이제는 인류가 자연과 자원, 동물, 바이러스와 같은 ‘비인간’과 공존할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죠. 인류는 계몽주의 시대부터 이어온 인간 중심 세계관의 실패와 맞닥뜨리고 있습니다. 전례 없는 위기를 극복하려면 우리의 공동체가 ‘필요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는 겁니다. 이미 변화가 시작된 시점에서, 기존의 시스템이 드러낸 한계를 교정하는 차원을 넘어선 새로운 방법이 필요합니다. 그것은 인문학적 상상력에서 찾을 수 있죠. 실제로 SF소설이나 영화에서만 봤던 미래 사회가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현실이 되고 있잖아요. 인문학의 위상과 역할을 고찰할 때가 됐습니다. 이제는 인문학이 새로운 연구 영역을 개척하고 연구 방법을 만들어내기 위해 더 많은 관심과 큰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인공지능(AI), 메타버스 등 신기술이 가져올 새로운 세상에 대한 기대감도 높은 반면 과학기술이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도 많은데요.
“AI, 빅데이터, 4차 산업혁명, 메타버스 등 새로운 기술이 끊임없이 생겨나고 있지만 어느 순간 우리는 양적 성장의 한계에 부딪히면서 과학기술만으로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에 직면했습니다. 특히 과학기술이 대체하지 못하는 의사소통, 리더십, 협력 등 소프트 스킬이 중요해지면서 인문학적 소양을 갖춘 인재 양성과 인문학 교육·연구를 위한 기반 조성의 필요성이 강조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연구재단은 인문학의 본질 실현을 위한 교육·연구 지원을 지속할 예정입니다. 인문학의 교육·연구 거점으로서 인문한국플러스(HK+) 연구소의 내실 있는 운영을 뒷받침하고, 인문사회연구소 지원 사업의 현장 안착을 도모하는 것이죠. 또한 인문학의 관점에서 우리나라와 글로벌 사회의 문제 해결을 위해 융합 연구가 필요한 ‘거대 어젠다(Mega-agenda)’를 발굴하며 인문학의 새로운 도전을 이어갈 예정입니다. 연구재단은 인문학과 과학기술의 균형 발전을 추구하고, 더 나은 사회로의 도약을 견인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해나가겠습니다.”
―앞으로 한국연구재단의 비전과 계획은 어떤 것인지요.
“기술 경쟁력이 국가의 흥망을 결정하는 시대가 도래하면서 기술주권 확보가 무엇보다 중요한 이슈가 되고 있는데, 이런 과제를 해결하려면 연구자, 정부 부처, 지원 기관, 산업체 등이 지혜를 모으는 소통과 협력의 장이 필요하죠. 연구재단은 각 주체를 아우르는 논의의 장, 즉 ‘대전환 시대의 학술 및 연구개발 방향을 제시하는 플랫폼’을 구축해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또한 과학기술 발전과 더불어 인간성에 대한 성찰과 이해가 수반돼야 한다는 원칙을 지키며 인문사회 분야를 필두로 초(超)학제적 연구 협력의 기틀을 마련하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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