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해 전, 서양화가 서용선(71)은 자신의 회화 작업을 총 정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서울대 미대 교직을 떠나 전업 작가가 된 2008년부터 시작했다. 올 7월 출간된 ‘서용선 2008-2011’(연립서가)은 그 결과물이다.
이 책에는 각 작품 도판과 전시 이력, 작품에 대한 비평 등이 포함됐다. 최근 동아일보와의 화상통화에서 서 작가는 “이 책은 전작도록(전체 작품 이력과 출품 기록을 담은 것으로, 미술품 감정의 기초 자료로 활용되는 책)의 중간단계 작업”이라고 말했다.
최근 국내 생존 작가들이 전작도록을 미리 준비하는 경우들이 늘고 있다. 보통 전작도록은 작가가 작품 활동을 중단했을 때, 즉 일반적으로 사후에 제작한다. 하지만 이럴 경우 전작도록에 수록할 작품에 대해 학자 간 이견이 생겨 작업이 중단되기도 하고, 수록작에 대한 진위에 대해 다른 의견이 나올 가능성이 많았다. 이 때문에 작가들이 생전부터 자신의 전작도록 작업에 힘써야 한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리고 있다.
서 작가는 “작품 소유나 기증 이력들을 작가 개인이 추적하기에는 한계가 있었다”며 책에 대한 아쉬움을 표했지만, 국내에서 미미한 연도별 도록 제작에 돌입했다는 것으로도 의의는 크다. 그는 “작품에 대한 기억은 1차적으로 작가에게 있으니 작가의 참여가 중요하다. 이러한 중간 단계 노력이 있다면 사후 전작도록 제작이 원활함은 물론 내용도 풍부해질 것”이라며 “앞으로도 작품 3, 4년 치씩 묶어 꾸준히 책으로 내놓을 예정”이라고 밝혔다.
예술경영지원센터도 전작도록의 사전 단계인 ‘원로작가 디지털 아카이빙 자료수집 연구지원’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한 작가의 현재까지 작품 활동을 정리해 온라인에 공개하는 식이다.
2015년부터 박서보(91), 김순기(76), 김영원(75) 등 30명을 대상으로, 한 작가 당 3~6명의 연구진이 1~2년간 진행한다. 심지언 예술경영지원센터 시각사업본부장은 “원로 작가 중 아카이브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높지 않으신 분들이 있다. 생전에 연구자들과 함께 객관적인 작품 정보를 정리해야 추후 연구, 유통 등에 원활하다”고 말했다.
해외에서는 이미 여러 생존 작가가 전작도록 작업에 뛰어들고 있다. 독일 대표화가인 게르하르트 리히터(90)는 2011년에 1962~1968년 도록을 시작으로 현재 6권까지 내놓았다. 이인범 전 상명대 교수는 “생존 작가가 전작도록을 만들게 되면, 그 과정에서 자기 작품에 대한 자가 비평이 가능해진다. 전작도록이 단지 진위 여부 기준이 되는 걸 넘어서서 작가에게 유행에 휩쓸리지 않고 뿌리를 만들어주는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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