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복제처럼 똑같은 그림을 그리는 것 같아 부담스러울 때도 있지만, 그래도 보리밭을 그리고 싶은 걸 어쩌겠어요.”
‘보리밭 화가’ 이숙자 화백(80)이 6년 만에 개인전으로 돌아왔다. 서울 종로구 선화랑에서 19일 열린 선화랑 45주년 기념전 ‘이숙자’에서 만난 그는 수줍은 미소로 작품을 소개했다.
40점을 출품한 이번 전시에는 2022년 작품도 3점 포함됐다. 역시 모두 보리밭이다. ‘분홍밭 장다리꽃이 있는 보리밭’과 ‘청보리―초록빛 안개’는 각각 1981년, 2012년에 그렸지만 마음에 들지 않아 전면 개작했다. 이 화백은 “파기할까 고민도 했지만 내 자식이 부족하다고 버릴 순 없지 않으냐”며 “과거의 저와 현재의 제가 합작했다고 여겨 달라”고 했다.
천경자 화백(1924∼2015)의 제자인 그는 이번 전시에 1980년대부터 쌓아온 자신의 화업(畵業) 50년을 두루 조망할 작품을 많이 선보였다. 그 가운데 ‘이브의 보리밭 90-6’(1990년)은 빼놓을 수 없는 대표작. 보리밭에 맨몸으로 누운 여성을 그린 작품은 당시에도 적나라한 묘사로 파장을 일으켰는데, 32년이 지난 지금도 당당한 기세가 느껴진다.
“발가벗은 여성의 몸도 사람 얼굴 보듯 낯익었으면 좋겠어요. 낮은 여성 인권에 대한 저항과 인습에 대한 반항이 의식 속에 있지 않았나 싶어요.”
이 화백은 최근 자화상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매일 맨몸으로 거울 앞에 서서 자신의 몸과 얼굴을 캔버스에 담는다고 한다. 그는 “이번에 처음 공개한 ‘푸른 모자를 쓴 작가의 초상’(2019년)은 날 너무 곱게 그린 것 같다”며 “‘볼 테면 보라지’라는 마음으로 자화상을 그리고 있다”고 했다. 다음 달 19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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