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연휴를 제외하면 가을은 전통적으로 극장가의 비수기다. 그러나 아무리 비수기라고 해도 현재 관객 수는 처참한 수준이다. 이달 1∼23일 극장 관객은 498만 명. 팬데믹 이전인 2019년 같은 기간(1121만 명)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팬데믹이 기승을 부린 2020년(344만 명), 2021년(391만 명)보다는 늘었지만 예상보다 저조한 수준이다.
국내 첫 주크박스 뮤지컬 영화로, 지난달 28일 개봉한 ‘인생은 아름다워’는 관객 98만 명을 모으는 데 그쳤다. 손익분기점(220만 명)에 턱없이 부족하다. 같은 날 개봉한 코미디 영화 ‘정직한 후보2’ 역시 올해 두드러졌던 후속편 흥행을 이어갈 것이란 기대를 받았지만 관객은 88만 명에 머물고 있다.
외화도 비슷하다. 할리우드 액션 스타 드웨인 존슨의 히어로물 데뷔작으로 관심을 모은 ‘블랙 아담’은 19일 개봉 후 5일간 43만 명이 관람했다. 엔데믹 시작 국면인 5월 개봉한 마블 영화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가 5일간 350만 명을 모은 것과 비교하면 차이가 확연하다. 지난달 7일 개봉한 한국영화 ‘공조2: 인터내서날’만이 관객 689만 명을 모으며 나 홀로 선방하고 있다.
극장업계는 할리우드 대작이나 국내 인기작을 재개봉하며 관객 끌어오기에 발 벗고 나섰다. CGV는 최근 영화 팬의 메카로 불리는 서울 용산구 CGV용산아이파크몰에 마블 히어로물 등 디즈니 계열 영화만 상영하는 전용관을 열었다. 이곳에선 2015년 개봉해 1000만 관객을 모은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 등 여러 작품을 재상영하고 있다. 롯데시네마는 ‘탑건: 매버릭’을 개봉 4개월이 지난 현재도 상영하며 마지막 한 명의 탑건 팬까지 모으고 있다. 박찬욱 감독의 ‘헤어질 결심’(6월 29일 개봉) 역시 두꺼운 팬덤을 확보해 주요 영화관들이 지금도 상영 중이다.
하지만 가족 단위 관객을 불러올 한국영화 대작 개봉이 연말까지 거의 없어 업계에선 ‘보릿고개’가 장기화될 것으로 보고 있다. 12월 중순 개봉하는 ‘아바타: 물의 길’이 연말 한국영화 대작이 자취를 감추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했다. ‘아바타’(2009년) 후속편으로, 제작비 3600억 원이 투입된 이 대작은 아바타 제작진이 13년간 칼을 갈며 만든 작품이다. “아바타와의 맞대결은 피해야 한다”는 인식이 퍼지면서 12월 등판할 한국영화 대작은 안중근 의사의 마지막 1년을 그린 ‘영웅’이 유일하다. 동명의 뮤지컬을 영화로 만든 ‘영웅’은 ‘아바타: 물의 길’ 개봉 일주일 후 극장에서 상영될 것으로 예상된다.
‘아바타 효과’로 관객 수가 단기간에 늘어날 순 있어도 ‘아바타: 물의 길’ ‘영웅’ 외 대작이 없어 연말 특수를 기대하긴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한 영화사 관계자는 “10, 11월에 ‘자백’ ‘리멤버’ ‘나를 죽여줘’ ‘미혹’ ‘귀못’ 등 중저예산 한국영화 개봉이 몰린 것도 아바타와의 정면승부는 상상도 할 수 없기 때문”이라며 “아바타에 대한 관심이 식어야 대작 개봉 일정을 잡을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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