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uxury Car]
마세라티-롤스로이스 전기차, 세단 대신 2도어 쿠페 선택
캐딜락은 맞춤형 모델로 승부
차체 디자인-오디오 시스템 등 독창적인 특징 살려 반영하기도
최근엔 전동화-자율주행이 주목
기존 럭셔리카 가치인 전통보다 디지털 경험을 더 중요하게 보기도
최근 럭셔리 자동차 브랜드들이 몇 년간 준비해온 전기차들이 잇달아 실체를 드러내고 있다. 마세라티는 신형 그란투리스모를 통해 순수 전기 모델 시대에 들어섰음을 알렸다. 신형 그란투리스모는 전기 동력계를 갖춘 모델만 있는 것은 아니다. 전기 동력계를 얹은 모델인 폴고레와 함께 V6 가솔린 트윈터보 엔진을 얹은 모델인 모데나와 트로페오도 있다. 폴고레(Folgore)는 번개 또는 벼락을 뜻하는 이탈리아어다. 전기차에 어울리는 이름으로, 앞으로 나올 마세라티의 다른 순수 전기 모델에도 쓰일 예정이다.
롤스로이스 역시 예고했던 첫 순수 전기차 스펙터(Spectre)를 공개했다. 롤스로이스는 스펙터가 ‘롤스로이스 3.0’ 시대를 열 차라고 강조하고 있다. 전통적인 롤스로이스의 장점과 가치들을 이어나가면서, 디지털 시대에 걸맞은 기술과 개념을 담은 새 롤스로이스의 바탕이 되리라는 뜻이다. 스펙터는 전기차 시대에 어울리는 디자인과 기술적 요소를 담고 있으면서, 현재 생산 중인 다른 모델들에서도 볼 수 있는 전통적 스타일과 특징도 이어받았다.
우연의 일치겠지만, 마세라티 그란투리스모 폴고레와 롤스로이스 스펙터는 모두 2도어 쿠페라는 공통점이 있다. 럭셔리 카에서 가장 보편적인 형태인 세단이나 요즘 유행하는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로 먼저 내놓지 않고, 상대적으로 특별한 장르인 차들을 내놓은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주류 모델보다는 소수의 특별한 차를 원하는 구매자들을 통해 전기차의 가능성을 미리 확인해보겠다는 생각일 것이다. 쿠페는 다른 장르 차들보다 개인적인 취향과 돋보이는 개성을 중시하는 사람들이 선택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다른 럭셔리 브랜드들도 전기차 개발과 출시에 속도를 내고 있다. 스포츠카 전문 브랜드인 로터스는 브랜드 첫 SUV인 엘레트라(Eletre)를 통해 전기차 생산 대열에 동참했고, 그보다 먼저 공개한 첫 전기 스포츠카 에바이어(Evija)가 그 뒤를 이을 예정이다. 메르세데스-마이바흐는 첫 전기 SUV인 EQS의 막바지 개발에 한창이다.
이 밖에도 벤틀리, 애스턴 마틴, 페라리 등 이름난 유럽 럭셔리 자동차 브랜드들은 2025년을 전후로 첫 전기차 출시를 예고하고 있고, 람보르기니도 2030년까지 최소 두 종류의 순수 전기차를 내놓을 계획이다. 최근에는 맥라렌도 첫 전기차로 SUV를 개발한다는 계획을 밝혔다.
전동화는 미래에도 브랜드를 지속하기 위한 선택이지만, 다른 한편으로 전동화 흐름이 기성 럭셔리 브랜드에 위협 요소로 작용할 수도 있다. 화석연료를 쓰는 엔진보다 진동이 작고 조용한 전기 동력계의 특성은 상대적으로 브랜드 이미지가 낮은 업체들이나 신생 업체들이 기성 럭셔리 브랜드의 아성에 도전할 기회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최근 선보인 몇몇 전기차들의 면모를 보면 럭셔리 카 시장의 분위기를 바꾸겠다는 의지를 읽을 수 있다.
대표적인 예가 캐딜락 셀레스틱(Celestiq)이다. 캐딜락은 20세기 초중반만 해도 ‘세계의 기준(Standard of the World)’이라는 표어를 쓸 만큼 미국 럭셔리 카의 자존심과 같은 존재였다. 그러나 1970년대 이후 위상이 크게 낮아졌고, 지금은 미국 시장에서 유럽 프리미엄 브랜드를 견제하는 역할에 머무르고 있다. 그러나 최근 선보인 셀레스틱을 통해 캐딜락은 한동안 미국 브랜드 차들에서 접하기 어려웠던 럭셔리 브랜드 차의 요소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캐딜락은 셀레스틱을 완전히 구매자 취향에 맞춰 주문 제작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주문은 엄선된 딜러를 통해 이루어지고, 구매자는 캐딜락 디자이너와 직접 소통하며 요소별 1:1 상담을 통해 안내를 받아 원하는 항목을 맞춰 나가게 된다. 이는 그동안 캐딜락에서 볼 수 없었던 과정으로, 정통 럭셔리 브랜드들의 맞춤 주문 과정을 도입한 것이다.
셀레스틱이 다른 럭셔리 브랜드 차들과 구분되는 특징 중 하나는 독창적인 디자인과 실내 꾸밈새다. 지붕선이 차체 뒷부분과 매끄럽게 이어지는 패스트백 스타일 차체에 차체 앞 대부분을 차지하는 그릴, 수직형 램프 등은 색다른 개성을 자아낸다. 실내 앞 유리 아래에 가로로 길게 뻗어 있는 55인치 8K 대형 디스플레이가 특징이다.
또 다른 특징으로는 실내 공간의 경험에 공을 들였다는 점이다. 셀레스틱에는 실내 스피커 38개와 실외 스피커 3개, 30개 채널을 제어하는 3 개의 앰프로 이루어진 AKG 스튜디오 레퍼런스 오디오 시스템이 들어간다. 이 시스템에는 높은 수준의 소리 재생 능력과 함께 소음 상쇄, 대화 증폭, 주행음 생성 등 실내에서 이루어지는 소리와 관련된 경험을 다양하고 깊이 있게 고려한 기능이 담겨 있다. 전기차 고유의 장점을 잘 살리면서 청각적인 경험을 더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리겠다는 의도다.
캐딜락이 제시한 셀레스틱의 기본값은 30만 달러 후반대로 우리 돈으로 환산하면 5억 원대에 해당한다. 여느 캐딜락 모델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비쌀 뿐 아니라 맞춤주문 항목에 따라서는 훨씬 더 큰 값을 치러야 손에 넣을 수 있다. 셀레스틱을 통해 프리미엄 브랜드를 넘어서 진정한 럭셔리 브랜드 영역에 다가가겠다는 것이 캐딜락의 의도인 셈이다. 나아가 캐딜락은 2023년 4분기 중에 구매자에게 셀레스틱을 인도하기 시작할 예정이라고 하니, 럭셔리 브랜드들 중에서도 전기차 생산이 빠른 편에 속한다.
캐딜락의 새로운 도전에 주목하게 되는 가장 큰 이유는 럭셔리 카의 기준이 바뀌고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데 있다. 역사와 전통, 장인정신 등이 지금까지 럭셔리 카를 가르는 기준이었다면, 전동화와 자율주행 등이 주목받는 지금은 디지털 중심의 경험과 혁신이 중요한 가치로 여겨진다. 전통적 기준으로는 대중차에 가까운 테슬라를 럭셔리 브랜드로 분류하는 사람들의 생각도 그와 같은 맥락이다.
그런 관점에서 캐딜락이 초점을 맞춘 것은 ‘경험’이다. 예나 지금이나 럭셔리 카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는 구매자들에게 다른 차들에서 경험할 수 없는 특별함을 주는 데 있다. 캐딜락은 셀레스틱을 통해 기존 럭셔리 카의 가치 기준에 새로운 기준인 디지털 기술의 편리함과 편안함, 실감할 수 있는 혁신을 더해 보여주고 있다.
그와 같은 도전이 성공할 수 있을지는 아직 알 수 없다. 그러나 만약 럭셔리 카 구매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다면, 캐딜락은 21세기에 브랜드 위상을 높이며 새롭게 도약하는 것은 물론 전기차 시대 럭셔리 카의 기준을 분명하게 세울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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