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주를 얼마나 잘하는지를 증명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람들의 삶에 기쁨과 용기를 주기 위해 연주하는 겁니다. 이게 가장 중요해요.”
따뜻한 음색을 가진 서양의 금관악기 호른. 왼손으로는 음정을 조절하는 밸브를 누르고, 오른손으로는 음색과 볼륨의 미세한 변화를 조절해야 한다.
비장애인도 까다롭게 여기는 이 악기를 왼발과 입술만으로 다루는 연주자가 있다. 양팔이 없는 채로 태어난 독일의 호르니스트 펠릭스 클리저(31)다.
왼발로 밸브를 조작하고, 오른손이 해야 할 일은 입술이 대신하지만, 2014년 독일의 저명한 음악상인 에코 클래식상에서 ‘올해의 영 아티스트상’을 받는 등 실력을 인정받고 있다. 지난해부터는 영국 본머스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상주 음악가로도 활동 중이다.
오는 9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IBK챔버홀에서 독주회를 여는 클리저는 <뉴스1>과의 서면 인터뷰에서 “최고의 목표는 음악으로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다른 연주자와 비교해 자신의 위치를 확인하는 데 헛심을 쓰지 않는다. 클리저는 “외부에서 나를 어떻게 평가하는지는 내 판단의 영역이 아니고 중요하지도 않다”며 “누가 최고의 연주자이고 누가 최악인지를 구분 짓는 사람들은 음악의 참 의미를 모르는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는 목표나 과정보다 결과만 바라는 실수를 저지르기 쉽습니다. 훌륭한 독주자가 되려면 악기를 잘 연주할 뿐만 아니라 사람들에 전할 이야기가 있어야 해요. 연주자의 목표는 훌륭한 독주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악기에 최대한 통달하고 삶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가지는 것입니다.”
클리저는 자신의 장애에 대해서도 사람들이 생각하는 약점이 추가된 것일 뿐이라고 했다. 그는 “누구에게나 강점과 약점은 있고, 아무리 큰 약점이 있더라도 할 수 있는 일이 분명히 있다”며 “이 사실을 안다면 한계란 없다”고 밝혔다.
클리저는 5살 때 우연히 듣게 된 호른의 음색에 매료돼 호른을 배우기 시작했다. 그가 살던 괴팅엔은 독일 중부의 작은 도시라 호른을 가르쳐줄 선생님이 많지 않았다. 또 길고 정교한 호흡을 요하는 호른을 다루기엔 너무 어린 나이였으나 클리저는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호른의 매력으로 다양한 음색의 연주가 가능하다는 점을 꼽았다. 클리저는 “호른 연주자가 한 음만 연주해도 단번에 매우 특별한 분위기가 만들어진다”며 “호른으로 다양한 감정을 표현할 수 있어 좋다”고 설명했다.
클리저는 이번 독주회에서 슈만의 ‘아다지오와 알레그로’, 베토벤의 ‘호른과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 등을 들려줄 예정이다. 피아니스트 조재혁도 협연자로 무대에 오른다.
슈만의 ‘아다지오와 알레그로 같은 작품은 첼로를 위한 곡으로 알려졌지만, 원래 호른을 위해 만들어졌다. 베토벤 소나타도 마찬가지다. 찾아보면 위대한 작곡가들이 남긴 호른 작품이 놀라울 정도로 많아 그런 작품들을 널리 알리고 싶었다고 한다.
앞서 2015년과 2018~2019년 한국 관객을 만났던 그는 “관객들에게 행복을 선사할 날이 기다려진다”면서 ’음악을 즐기라‘는 당부도 잊지 않았다.
“사람들에게 이런 생각과 감정을 가져야 한다고 말하고 싶지 않아요. 어떻게 느끼든 괜찮아요. 음악을 들으면 다양한 감정이 떠오르기 마련입니다. 어떤 곡에 대해 내가 이렇게 느낀다고 해서 다른 사람도 똑같이 느껴야 할 이유는 전혀 없죠. 스스로를 가두지 말고 감정을 자유롭게 펼치는 것이 중요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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