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객은 돌아왔지만 배우·기술자 떠난 대학로…팬데믹 후유증 앓는 공연계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11월 3일 11시 16분


팬데믹 한파가 지나고 관객들이 몰려 다시 활기를 찾은 대학로. 하지만 팬데믹 기간 배우, 기술인력들이 대거 유출돼 현재 후유증을 앓고 있다. 이문수 인턴기자(고려대 사학과 4학년)
팬데믹 한파가 지나고 관객들이 몰려 다시 활기를 찾은 대학로. 하지만 팬데믹 기간 배우, 기술인력들이 대거 유출돼 현재 후유증을 앓고 있다. 이문수 인턴기자(고려대 사학과 4학년)

# 2005년 대학로 뮤지컬의 단역으로 데뷔한 A. 3년 전만 해도 한 해에 대학로 공연에만 4~5건씩 섰던 베테랑 무대 배우였다. 올초 방송된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시리즈에 비중 있는 조연으로 출연하면서 인지도는 높아졌지만 요즘은 대학로 무대에서 찾기 힘들다고 한다. A에게 소속사까지 생기면서 향후 공연 계획도 대폭 축소됐다. 소속사 측은 “연극, 뮤지컬은 연습과 공연까지 최소 한두 달을 쏟아야 하는데 상대적으로 출연료는 적어서 꺼려지는 게 사실”이라고 했다.

# 개막을 일주일 가량 앞둔 한 연극의 제작PD 정모 씨(39)는 아직까지 무대 설치를 담당할 목수인력을 구하지 못했다. 기존 일당(15만 원)보다 많은 20만 원을 제안해도 소용없었다. 정 씨는 “공연이 없던 팬데믹 기간 기술자들이 건설이나 배달업으로 대거 이동했다”며 “팬데믹 때 일자리를 잃었던 트라우마 때문에 대학로서 더는 일 못하겠다는 게 요즘 기술자들 분위기”라고 전했다.

방역 방침이 완화되면서 관객들은 다시 공연장을 찾고 있지만 대학로는 여전히 팬데믹 후유증을 앓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코로나19) 감염이 한창이던 3년간 공연이 열리지 않으면서 대학로를 떠났던 배우와 기술 인력들이 돌아오지 않고 있어서다. 팬데믹 기간 배우들은 비대면 호황를 누렸던 OTT, 웹 콘텐츠 업계로 다수 이동했고 조명, 오디오, 무대설치 등을 담당한 기술자들은 건설업, 배달업 등 공연과 무관한 업종으로 빠져나갔다.

연극을 보기 위해 소극장으로 입장하는 관객들. 이문수 인턴기자(고려대 사학과 4학년)
연극을 보기 위해 소극장으로 입장하는 관객들. 이문수 인턴기자(고려대 사학과 4학년)

OTT로 간 배우들…배우 부족해 트리플·쿼드러플 캐스팅 난무

팬데믹 여파로 대학로서 공연이 열리지 않게 되자 배우들은 비슷한 시기 급성장한 OTT콘텐츠로 대거 이동했다. 대학로 간판 스타로 불렸던 전미도, 박해수 등의 배우들이 영상 콘텐츠에 본격적으로 얼굴을 알리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다.

이 때문에 요즘 대학로 공연계에선 주연급 배우 찾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 OTT에 출연했던 배우들이 인지도를 얻어 돌아오는 경우도 종종 있지만, 그만큼 출연료가 2~3배가량 올라 제작사 입장에선 부담이 커졌다. 대학로에서 20년 넘게 연극을 제작해온 B씨는 “OTT 출연으로 얼굴이 알려져 팬데믹 이전보다 출연료가 2~3배 높아진 배우도 있다”고 했다. 재작년 처음 OTT시리즈에 출연하면서 최근 소속사에 들어가게 된 37년차 배우 C는 “여전히 대학로에서 연극 무대에 서고 싶지만 소속사에서 좋아하지 않으니 예전만큼 할 수 없는 게 사실”이라고 했다.

주연급 배우 부족난이 심화되면서 요즘 대학로 공연에는 같은 배역에 여러 명의 배우를 동시에 출연시키는 경우가 많아졌다. 소수의 주연급 배우들이 여러 공연의 출연 제의를 받으면서, 제작사 측에 적은 공연회차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한 배역이 2명을 캐스팅하는 더블은 기본이고 트리플(3명), 쿼드러플(4명) 캐스팅이 대세다. 9월 개막한 뮤지컬 ‘인간의 법정’의 주인공 호윤표는 3명, 아오는 4명이 연기한다. 뮤지컬 ‘삼총사’는 무려 5명의 배우가 주인공 달타냥을 맡고 있다. 김용제 한국프로듀서협회 회장은 “요즘 공연계에선 한 명의 배우가 동시에 서너 개의 공연을 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배우가 한 작품에 집중할 수 없으니 공연의 질이 예전만큼 보장되긴 힘들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고 했다.

지난달 28일 서울 종로구 대학로의 한 소극장에서 기술 인력들이 무대 설치를 하는 모습. 이문수 인턴기자(고려대 사학과 4학년)
지난달 28일 서울 종로구 대학로의 한 소극장에서 기술 인력들이 무대 설치를 하는 모습. 이문수 인턴기자(고려대 사학과 4학년)
“팬데믹 오면 또 실업자 신세” 돌아오지 않는 기술자들

조명, 오디오, 무대설치 등 기술인력 유출도 심각한 수준이다. 2~3배 넘게 인건비를 올려도 스태프를 구하기 힘들다. 팬데믹 여파로 장기간 실업을 겪은 기술자들 사이에는 언젠가 코로나가 창궐하면 다시 실업자 신세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퍼져있다. 조명 기술자로 일하다 현재 대기업 공장에서 일하는 이재호 씨(47)는 “대학로 조명 인력의 절반 정도는 팬데믹 이후 공연계를 아예 떠났다고 보면 된다”며 “언제 다시 코로나가 심해질지도 모르는데 가족들 생계를 생각하면 공연업계로 돌아오는 것이 꺼려지는 게 사실”이라고 했다.

떠나간 기술자들을 붙잡기 위해 팬데믹 이전에는 15만 원 선이었던 일당은 20~30만 원까지 올랐지만 인력난은 좀처럼 해소되지 않고 있다. 그 결과 숙련 기술자가 아닌 지인 위주로 급하게 기술 스태프를 꾸리는 경우도 허다하다. 연극 제작자 C씨는 “급하게 충원한 무경력자들이 무대 스태프로 일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러다 안전사고라도 날까 걱정된다”고 했다.

지난해부터 2년간 문화체육관광부가 운영했던 무대인력, 극장 대관료 지원사업도 올해 말 종료된다. 코로나 추경으로 일시적으로 편성된 예산이었기 때문. 임정혁 한국소극장협회이사장은 “인건비를 2배 넘게 올려도 상황에서 사람을 구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무대인력 지원사업은 어떤 정책보다 직접 체감지수가 높았다. 지원을 연장해달라고 담당 부처에 요청했지만 확답은 받지 못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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