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호는 맑은 목소리로 또박또박 조리 있게 이야기할 것 같은 인상이라면, 83호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 이야기를 실컷 들어주고는 ‘그래, 잘했네’ 하고 싱겁게 웃어줄 것 같은 모습이다. 똑 부러지는 조언이 필요할 때는 78호 앞으로, 바보 같은 이야기지만 들어줄 사람이 필요할 때는 83호 앞으로 가고 싶어진다.”
그룹 방탄소년단(BTS)의 리더 RM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계정에 올려 화제가 된 ‘금동 반가사유상’ 두 점을 언제든 접할 수 있는 사람의 감상(感想)이다.
현재 이 유물은 국립중앙박물관 ‘사유의 방’에서 전시 중이다. 이 박물관 학예연구실 연구원으로 일하는 저자는 신간 ‘박물관을 쓰는 직업’에서 두 불상의 옷차림 등 그 양식을 설명하면서도 이 같은 정감 어린 비유를 남겼다.
이 책은 박물관의 일과 사람 그리고 유물에 대한 것이다. 직업인으로서 애환이 녹아 있어 흡사 직장인 브이로그를 보는 듯하다.
저자는 동료들이 내놓은 책더미에서 애타게 찾던 도록을 우연히 구하기도 하고, 한여름 시원한 풍경이 담긴 산수도를 보며 더위를 식히기도 한다. 이는 박물관에서 일하는 사람만이 느끼는 기쁨이다.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그중에서도 남송 시대 화가 마원(馬遠)의 화풍을 따라 그린 여름 산수도 하나는 성마른 마음을 착 가라앉혀주는 그림이다. 칼로 썩썩 베어낸 듯 날카로운 바위산 아래, 소나무 그늘에 걸터앉은 선비가 백로들이 오가는 얕은 물을 바라보고 있다. 무릎에 얹은 검은 고금(古琴)을 타던 손을 잠시 멈추고 고개를 든 이유는, 아마 지금 막 새 한 마리가 소나무 우듬지를 박차고 날아오른 기척을 느껴서인지 모른다. 차 한 잔을 내어가기 좋은 타이밍, 뒤에서 지켜보던 시동이 재빨리 차를 젓는다. 안개가 서린 여름날이라 차 향기가 벌써 저 앞까지 퍼졌을까. 돌아보지 않았지만 선비의 얼굴에는 벌써 선선한 기쁨이 퍼져가고 있을 것만 같다.”
‘창령사터 오백나한’전을 위해 싸늘한 전시실에서 패딩 차림으로 바닥에 벽돌을 하나하나 깔고 인조 잔디를 손수 심은 일화 등 전시 준비 과정의 고됨 또한 엿볼 수 있다.
유물을 보는 남다른 시선도 담겼다. 저자는 위쪽과 아래쪽을 붙여 이음매가 보이는 ‘달항아리’에 대해 “겨울에 붕어빵을 살 때 바삭한 가장자리가 많이 달려 있으면 신이 나는 것처럼, 보기에 덜 말끔한 그 부분이 오히려 달항아리에 고소한 맛을 더해준다”고 말한다.
박물관 3층 분청사기 백자실에 있는 ‘백자 철화 포도원숭이무늬 항아리’, ‘백자 청화 매화무늬 병’ 등 저자가 아끼는 유물과 그 이유도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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