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1일 나태주 시인(77)은 시 ‘못다 핀 꽃들이여… 어여쁜 영령이여’(동아일보 1일자 A1면)와 함께 이런 문자메시지를 보내왔다.
시는 이태원 핼러윈 참사 피해자들과 유족들을 위로하기 위해 나 시인이 슬픔을 참아가며 꾹꾹 눌러썼다. ‘아, 우리의 청춘들이 넘어지고 엎어지고/그 자리에서 그렇게 많이 세상을 뜨고 말았으니…’ 애달픈 시구에선 타인의 슬픔에 공감하는 문학의 본질이 느껴졌다. ‘미안하오 미안하오/우리가 미안하오/그대들보다 우리 나이 많은 사람들’에선 타인에게 책임을 미루지 않는 참된 어른의 진정성이 배어났다. 피해자를 향한 혐오와 비난이 고개를 내밀던 인터넷 공간에선 쉽사리 만나볼 수 없는 깊이였다.
임동식 화가가 그린 그림과 나 시인이 쓴 시를 담은 시화집(詩畵集) ‘그리운 날이면…’ 역시 그런 품격과 정감이 느껴지는 책이다. 나뭇잎 두 장을 귀 옆에 꽂은 남성의 모습이 담긴 그림 ‘산토끼’에 나 시인은 ‘토끼야 두 눈을 감고/나하고 놀자’라고 해맑게 외친다.
노란 수선화가 가득 찬 평원에서 한 남성이 고개를 숙인 그림 ‘고개 숙인 꽃과 마주한 인사’도 인상적이다. ‘친구들 향해/인사를 해야지//오늘 하루 우리 서로/잘 부탁해요/허리 숙여 공손히!’라고 천진난만하게 썼다. 여름밤 비가 쏟아지는 풍경을 담은 그림 ‘1975 여름의 기억’을 보고서는 ‘어떻게 어둠 속에서 빛을/데리고 나올 수 있었을까’라고 신기해한다.
시와 그림도 훌륭하지만 또 하나 감동적인 대목이 있다. 나 시인이 자신과 임 화가는 “인생의 궤적이 전혀 다르다”고 고백한 글이다. 평생 초등학교 교사로 살다가 정년퇴직을 한 시인과 달리, 화가는 그림이 관련되지 않으면 전혀 대외 활동을 하지 않았다. 시인은 부인과 자녀가 있지만 화가는 평생 독신. 서로 닮은 점을 찾기 어렵지만 시인은 화가의 그림에서 시를 읽어내고 싶었다고 한다. “지구라는 별, 그 가운데서도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만나 한 세상을 함께 살았으니 서로는 어떤 실로도 이어져 있기 때문이다.
나 시인은 1일 오후 열린 한 강연에서 시 ‘못다 핀 꽃들이여… 어여쁜 영령이여’를 직접 낭송했다. 희수(喜壽)의 시인이 떨리는 목소리를 부여잡고 시를 읽어 내려가자 수강생 40여 명은 하나둘씩 훌쩍거렸다고 한다.
그날 강연 참석자들 가운데 이태원 핼러윈 참사 피해자와 직접 연관이 있는 사람이 있었는지 여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그들은 모두 시인의 낭송을 듣고 마음 깊이 아파했다. 우리는 모두 지구라는 별, 그 가운데서도 한국이라는 나라에 함께 살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지금 우리 모두에게 가장 필요한 건 혐오가 아니라 ‘조그마한 위로’다. 나 시인의 조시(弔詩)를 읽으며 다시 한 번 삼가 조의를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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