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성범죄는 본능 탓?… 인류는 그렇게 진화하지 않았다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11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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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에 관한 생각/프란스 드 발 지음·이충호 옮김/568쪽·2만2000원·세종

서로 다른 3개의 보노보 무리가 나무 위에 올라 몸을 맞대며 함께 생활하는 광경. 콩고민주공화국의 암바 야외 연구 장소에서는 
이렇게 여러 무리가 뒤섞여 평화롭게 지내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고 한다. 요코야마 다쿠마, 후루이치 다케시 제공
서로 다른 3개의 보노보 무리가 나무 위에 올라 몸을 맞대며 함께 생활하는 광경. 콩고민주공화국의 암바 야외 연구 장소에서는 이렇게 여러 무리가 뒤섞여 평화롭게 지내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고 한다. 요코야마 다쿠마, 후루이치 다케시 제공
“여성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다.”

20세기 프랑스 페미니스트 시몬 드 보부아르(1908∼1986)의 이 말은 당시 ‘젠더’를 둘러싼 진화생물학적 관점을 완전히 뒤집어 놓았다. 정말 성(性)은 원래부터 주어진 게 아니라 사회·문화적으로 만들어지는 걸까. 날 때부터 타고난 본성이란 존재하지 않는 걸까.

미국 애틀랜타 에머리대 심리학과 석좌교수이자 여키스 국립영장류연구센터 책임자로 세계적인 진화심리학자인 저자는 젠더를 둘러싼 진화생물학자와 페미니스트의 대립 사이에서 균형 잡힌 시각을 제시하려 노력한다. 한마디로 “타고난 본성은 존재한다. 다만 인간은 유전자와 환경 사이에서 상호작용하며 변화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폭력성과 양육, 성관계 등 다양한 관점에서 진화생물학과 페미니즘이 맞부딪쳐 온 젠더 이슈를 다루며 절충점을 찾아간다.

일단 성의 차이는 분명히 실재한다. 대표적인 사례는 1970년대 뉴질랜드 출신 미국 심리학자 존 머니의 실험이다. 머니는 잘못된 수술로 음경을 잃은 캐나다 남아의 성전환 과정에 개입한 적이 있다. 부모에게 고환을 완전히 제거하는 수술을 권유하고 아이를 여아로 키우라고 권유했다. 보부아르의 말대로 성이 타고나는 게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라면 아이는 여성화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결과는 실패였다. 아이는 제 본성을 알지 못했는데도 부모가 사다준 인형을 내다버렸다. 레이스가 달린 원피스를 찢어버리기도 했다. 14세 때 자신의 성 정체성에 대한 진실을 깨닫고 결국 ‘남성성’도 되찾는다. 하지만 상실감을 견디지 못하다 38세에 극단적인 선택을 한다. 이 사례는 타고난 성이란 존재하며, 이를 타인이 강요하거나 바꿀 수는 없음을 보여준다.

저자는 “강간은 수컷의 자연적 선택”이라 우기는 남성 중심적 진화생물학계의 주장도 뒤집는다. 2002년 출간된 ‘강간의 자연사’에서 미 생물학자 랜디 손힐과 인류학자 크레이그 파머가 “남성이 성적으로 호응하지 않는 여성을 다루기 위해 선택하는 자연스러운 행동”이라고 주장한 것을 정면으로 반박한다. 저자는 “수렵 채집인 사회에서도 강간범은 무리에서 살해당하거나 배척당했으며, 심지어는 그의 자식까지 공동체 내에서 버림받는 지위에 놓였다”고 설명한다. 행여 성폭력적 유전자가 본성에 내재돼 있다 하더라도, 촘촘한 감시망을 갖추고 처벌하는 사회라면 도태되고 말 것이라는 분석이다.

인류와 닮은 동물인 보노보 무리에서 강간과 폭력이 쉽게 벌어지지 않는 이유 역시 이러한 촘촘한 유대관계 때문이다. 보노보는 대부분의 시간 동안 함께 여행하고, 밤에는 서로의 소리가 들리는 가까운 거리에서 잠이 든다. 서로가 서로를 보호하는 네트워크가 마련된 덕분에 폭력이 끼어들 틈이 없는 구조다.

비단 동물뿐일까. 저자는 인류도 젠더라는 차이를 넘어서 늘 서로를 지켜왔음을 강조한다. 1994년 르완다 내전 당시 적군이 남성과 소년들에게 해를 가하려 하자, 여성들이 자신의 옷을 빌려줘 그들을 숨겨줬다는 점을 상기시킨다.

물론 우리는 인정해야 한다. 폭력과 배제, 차별은 분명 인간이 가진 본성 가운데 하나다. 하지만 서로를 돕는 연대와 협력 역시 인류가 지닌 본성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저자의 꼼꼼한 분석과 통찰은 갈수록 격해지는 젠더 갈등에 지친 우리의 마음을 위로해준다.

#성범죄#폭력적 본능#인류 본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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