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건축은 법의 적용을 받습니다. 창도 건축의 일부이니 법에 민감하죠. 아니, 법에 의해 모양새가 정해지다시피 하기도 합니다. 1696년 영국은 창문 개수로 세금 매기는 법을 발효했습니다. 6개까지는 면제, 7개부터 중과하는 법안이었죠. 창문이 많은 집은 큰 저택일테니 부유층에게 세금을 걷겠다는 발상이었죠. 그런데 역시나 편법이 등장했습니다. 7개 창문만 남기고 창문을 벽돌로 메워버리는 집들이 생긴 것입니다. 큰 집 주인들은 가족들이 거주하는 공간의 창문만 남기고, 정원사 하녀 집사 등의 거주 공간의 창문을 메웠습니다.
▽어떤 유럽 나라들은 창문의 폭을 측정해 세금을 매기기도 했습니다. 창문이 크면 부자일 가능성이 크니까요. 결국 새로 짓는 집들은 창문 폭을 좁게 하되, 위아래로 길게 빼고 여러 개를 배치하게 됐습니다. 우리나라 건축법에선 ‘창호(窓戶)’에 대한 규제를 주로 화재 위험이나 채광 등 안전과 관련해 규정하고 있습니다.
▽창은 투명하지만 일방적입니다. 안에서 밖을 보긴 쉬워도 밖에서 안을 들여다보기는 쉽지 않으니까요. 실내보다는 실외가 더 밝아서인데요, 반대로 밤에는 밖이 더 어두우니 안이 들여다보이기도 합니다. 사진기자들에게도 창문은 매우 주요한 취재 공간입니다. 화제가 되는 정치인 등의 자택의 유리창을 찍는 이유입니다. 밤에는 창을 통해 실내가 보이기 때문이죠.
그런 점에서 한옥의 창호지 창은 독특합니다. 안팎이 보이지 않죠. 그런데 빛은 들어옵니다. 은은한 조명효과가 탁월하죠. 두께에 비해 단열효과도 좋습니다. 또 격자무늬 자체가 예술이고요.
▽유리창에도 창호지 못지않은 매력이 있습니다. 빛을 투과하면서도 동시에 반사하는 능력입니다. 거울의 역할이지요. 물론 거울과는 다릅니다. 애매하고 엉성하게 비춰줍니다. 흐릿하게 보이거나 실루엣으로 비춥니다. 의도하지 않은 기능이지만 좋은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길가다 주차된 차창에 반사된 자신의 모습은 멋져 보일 때가 많습니다. 골목 가게의 쇼윈도를 볼 땐 유리 너머의 물건만 보이는 게 아니죠. 길을 걸으며 거울 보듯 보면 옷매무새를 다잡기도 합니다. 요즘엔 겹유리도 많아 두 번 세 번 반사가 겹치면 흐릿하고 몽환적으로 비춰주기도 합니다. 자아도취도 가볍게 하면 기분이 좋아지죠.
물론 과도한 나르시시즘은 공동체에 해악입니다. 하지만 누구에게나 자아도취 성 마약(?)은 가끔 필요하죠. 자아 존중이라는 나무는 가끔 자아도취 비료를 조금씩 먹어줘야 튼튼하게 자라니까요. 다른 사람과 같이 일할 때는 절대 그러지 마시고요, 가끔 쇼윈도를 지날 때 자신을 쳐다보는 것으로 만족하시죠. 그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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