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리드옴므’ 브랜드 우영미 대표, 서울 광진구에 ‘패션하우스’ 완성
34년간 스케치-옷 아카이브 마련
“샤넬-구찌 같은 명품 역사처럼 브랜드 유산 계속 이어지는게 꿈”
대표 집무실도 꼭대기 대신 2층… “디자이너들과 거리 더 좁혀야죠”
멀리서도 범상치 않은 붉은색 전경. 가까이 다가서면 파이프 같은 굵고 기다란 철재가 정열을 머금고 건물을 끌어안듯 둘러싸고 있다. 얼핏 어디까지를 건축이라 부를지 구분이 가지 않는다.
“그게 ‘우영미’라는 브랜드의 특징이라 봐주면 좋겠어요. 남성과 여성, 동양과 서양에 대한 구분 없이 모든 가치관을 감싸 안으려고 합니다. 경계 없이 다양한 정체성을 포용하려 해요.”
국내는 물론이고 해외에서도 사랑받는 패션 브랜드 ‘솔리드옴므’가 최근 서울 광진구 천호대로에 ‘패션하우스’를 표방한 6층 규모 신사옥을 완공했다. 국내 최고 패션디자이너 가운데 한 명인 우영미 대표(63)는 2일 신사옥에서 동아일보와 만나 “1988년 창업할 때부터 품었던 패션하우스의 꿈을 34년 만에 이뤘다”고 말했다.
“설계할 때부터 건축가와 100번 이상 회의했다”는 그는 신사옥의 조그마한 자재 하나까지 심혈을 기울였다. 멋들어진 외관은 맛보기일 뿐, 내부는 건축적 아름다움이 더욱 도드라진다. 1층 로비에 들어서자마자 긴 복도에 사람 키의 2∼3배쯤 되는 대형 책장들이 일렬로 서 있었다. 해외 유명 도서관에 온 듯한 기분이 들었다.
솔리드옴므 직원들도 ‘도서관’이라 부르는 이 공간은, 책이 아닌 옷으로 가득 차 있다. 우 대표가 운영하는 브랜드 ‘솔리드옴므’와 ‘우영미(WOOYOUNGMI)’에서 여태껏 만든 옷들로 빼곡히 채워져 있다. 직원들은 여기서 책을 빌리듯 전작(前作)을 빌려가 연구한다. 새 디자인을 창조하기 위한 ‘참고문헌’인 셈이다.
“디자이너에게 가장 좋은 레퍼런스는 결국 우리 자신이 만들어낸 옷입니다. 자기복제와는 엄연히 다른 개념이죠. 우리 브랜드가 일궈온 유산이야말로 브랜드를 계속 새롭게 만드는 원천이 됩니다. 끊임없는 연구가 없다면 창조도 없으니까요.”
책장들 옆 공간에는 우 대표가 그간 해온 스케치 흔적과 영감을 줬던 소품들이 박물관 전시처럼 진열돼 있다. 우 대표는 “서른 무렵 브랜드를 창업했는데, 지금껏 간직해온 모든 스케치와 옷들을 축적하는 아카이브를 구축하려 했다”며 “언젠가 우영미가 없더라도 우리 브랜드의 철학은 계승 발전시키길 원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샤넬, 구찌 같은 브랜드는 단지 오래돼 지금까지 사랑받는 게 아니에요. 브랜드를 정립한 최초의 디자이너가 떠난 뒤에도 그 유산이 계속 이어져 내려왔기 때문입니다. 신사옥 건축의 핵심은 브랜드의 정체성이 이 공간에서 축적되며 더 나은 미래를 열어주길 바라는 거였어요.”
신사옥 제일 위층인 6층에서는 멀리 아차산 자락이 한눈에 펼쳐진다. 우 대표는 자신의 집무실로 ‘꼭대기 명당’을 마다했다. “디자이너들과 매일 회의하고 토론할” 2층을 선택했다. 그는 “디자이너는 아래로 마흔 살쯤 차이 나는 직원과도 거리낌 없이 소통해야 한다”며 “위에서 지시하는 게 아니라 같은 눈높이에 머물러야 물리적 거리감을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테라스가 있는 6층과 3층은 직원들에게 내줬어요. 솔직히 경치가 너무 맘에 들어 살짝 혹하기도 했는데…(웃음), 수많은 의상 샘플과 스토리보드가 줄지어 있는 이 창고 같은 2층 공간이 디자이너의 일터거든요. 비좁은 이전 사옥에서 고생한 직원들에게 숨 돌릴 공간을 내주고 싶기도 했고요.”
이날 테라스에는 직원들이 삼삼오오 모여 앉아 있었다. 맑은 햇살을 즐기던 한 직원은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을 때 이렇게 머리를 식히면 상쾌해진다”고 했다. 우 대표는 “직원들에게 ‘일부러라도 테라스에 나가 멍때리라’고 한다”고 말했다.
“며칠 전 한 직원이 테라스에 요가 매트를 펴 놓고 누워서 하늘을 보고 있더라고요. 온 종일 책상에 앉아 있으면 아이디어가 떠오르겠어요? 일과 휴식의 경계를 허물 때 더 좋은 생각이 떠올라요. 패션에는 정답이 없거든요. 건축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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